좋아하는 시(詩 능선)

소태나무/고영민

능선 정동윤 2011. 8. 30. 15:09

소태나무/고영민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수밭 그늘을 치는 소태나무에게 갈  때면

그늘 밖 내가 소태나무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

가는 동안 내내

속이 훤히 내다뵌다

 

소태나무 속은 쉬 어둡고

먼저 온 그녀는 온종일 쓴 입맛을 다신다

눈 먼 새들이 계절 밖에 나가

눈 먼 알을 낳고 눈 먼 새끼를 데려오는 동안

소태나무 밑에서 그녀와 나는

초조한 발자국이 여럿

 

소태나무 아래 돌벤치로 잎새가 지고

가랑이를 오므린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

소태나무의 그 입맛으로

피고 진 꽃도 없이

그녀와 나의 입맞춤도 쓰고

온기도, 포옹도 쓸 터이니

 

무엇일까

오늘도 그림자 드리우는 너의 말은

먼데서 어줍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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