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나무/고영민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수밭 그늘을 치는 소태나무에게 갈 때면
그늘 밖 내가 소태나무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
가는 동안 내내
속이 훤히 내다뵌다
소태나무 속은 쉬 어둡고
먼저 온 그녀는 온종일 쓴 입맛을 다신다
눈 먼 새들이 계절 밖에 나가
눈 먼 알을 낳고 눈 먼 새끼를 데려오는 동안
소태나무 밑에서 그녀와 나는
초조한 발자국이 여럿
소태나무 아래 돌벤치로 잎새가 지고
가랑이를 오므린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
소태나무의 그 입맛으로
피고 진 꽃도 없이
그녀와 나의 입맞춤도 쓰고
온기도, 포옹도 쓸 터이니
무엇일까
오늘도 그림자 드리우는 너의 말은
먼데서 어줍고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소태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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