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느릅나무에게/김규동

능선 정동윤 2011. 9. 1. 10:39

느릅나무에게/김규동

 

 

나무

너 느릅나무

50 년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아름드리로 자라

희멀건 하늘 떠받들고 있느냐

8.15 때 소련 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도 없다

그래 맞다

너의 기억력은 백과사전이지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산 목숨보다 죽은 목숨이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

하나도 빼지 말고 들려다오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을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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