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서관/배한봉
부들과 창포가 뙤양볕 아래서
목하 독서중이다. 바람 불 때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들리고
더러는 시집을 읽는지 목소리가 창랑같다
물방개나 소금쟁이가 철없이 장난 걸어올 때에도
어깨 몇번 출렁거려 다 받아주는
싱싱한 오후, 멀리 갯버들도 목하 독서중이다
바람이 풀어놓은 수만권 책으로
설렁설렁 더위 식히는 도서관, 그 한켠에선
백로나 물닭 가족이 춤과 노래자랑 펼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가 깊어가고
나는 수시로 그 초록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가 스스로 창랑의 책이 되는 늪에는
수만 갈래 길이 태어나고
아득한 옛날의 공룡들이 살아나오고
무수한 언어들이 적막 속에서 첨벙거린다
이때부터는 신의 독서시간이다
내일 새벽에는 매우 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자연도서관에 들기 위해서는
날마다 샛별에 마음 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