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겨울 기행/곽재구

능선 정동윤 2011. 9. 16. 08:25

겨울 기행/곽재구

 

춥고 서먹한 겨울이었다

정미소 추녀 끝에 햇살을 쪼아대던

참새떼도 보기 힘들게 되었다

나무들의 언 손이 들녘의 한기를 부비는 식전

사격장을 향하는 우리들의 머리 위로

죽은 새들의 울음만 송이송이 흩어졌다

겨울 문틈으로 고드름만 간간이 떨어질 뿐

온수 한잔 어디서 마실 틈이 없었다

고향에서는 편지가 끊긴 지 오래였다

쇠죽 끓이는 가마 곁에서

산유화가 제일 좋다던 조카

공민학교 이학년에 편입한 그 녀석은

헌 시집처럼 눈물이 잦곤 했다

끝까지 시 공부를 할래 물으면

늘 부끄럽고 겸연쩍어하던 녀석

그 녀석도 이젠 다 커

읍내 박씨네 자전차포 점원이 되었다

춥고 서먹한 겨울이었다

사격장을 향하는 우리들의 머리 위로

죽은 새들의 울음만 송이송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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