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패러디

능선 정동윤 2011. 9. 20. 00:14

패러디

 

패러디의 정의

패러디는 인유와 혈연관계에 놓여 있는 문학적 장치이다. 패러디는 현대문학, 특히 서사문학에서 주목되는 원리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런 사정으 한국 현대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탈중심주의 문학관을(문학을 배제하지 않는 대신 문학을 전체 문화의 일부로 접근한다는 의미에서)표방한 문화비평, 특히 90년 전후 본격적으로 수용한 포스트모더니즘(최근에는 '탈근대주의'로 번역되는)의 핵심시학으로까지 격상된 중요한 비평개념이기도 하다.
패러디(parody)의 어원인 'parodia'는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려진 노래"라는 "모방하는 가수"의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이 두 상반된 어원적 의미로 보면 패러디란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의 양면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양면성이 원전(또는 과거)에 대한 패러디스트의 태도임은 말할 필요 없다. 모방과 변용이 패러디를 구성하는 기본개념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패러디의 역사는 문학의 역사만큼 오래다. 이것은 패러디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정의 되어 온 사실을 시사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패러디는 '원전의 풍자적 모방' 또는 원전의 '희극적 개작'으로 정의된다. 더욱 좁은 의미로 특정한 원전의 진지한 소재나 태도, 또는 특정 작가의 고유한 문체를 저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주제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 ㅎ 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이것은 주기도문의 진지하고 엄숙한 문체와 어조를 저급한 주제에 적용시킨 전형적인 패러디시다. 패러디는 풍자와 혼동할 정도로 주로 풍자적 목적을위해 채용된다. 풍자는 패러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여기서 패러디의 유형분류가 가능해 진다. 이 <주기도문, 빌어먹을>의 경우 모방의 대상은 주기도문이지만 풍자의 대상은 시인이 유희적 태도로 독자에게 직접 말 건네는 형식을 취한 괄호 안의 진술이 시사하듯이, 원전인 주기도문이 아니라 육공의 기만적 지배체제(또는 육공의 기만적 정치적 담론)다. 그러나 문병란의 <가난>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無等을 보며>,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등 여러 작품들 (또는 미당 시인) 자체가 모방의 대상이면서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패러디시는 현대적 감수성에 의해서 원전을, 더 구체적으로 원전의 방법, 제재, 문체, 사상 등을 우롱하기 위해 패러디 전략을 채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패러디시는 과거보다는 당대적 관습, 당대의 정치와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진지한, 때로는 신성한 원전을 왜곡한다.
전통적으로 패러디에서 골계적인것, 곧 희극적인 것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원전의 희극적 개작이라는 정의가 시사하듯이 희극적인 것은 원전을 왜곡(변용)시키는 작인이자 그 효과이기 때문이다. 모방.변용.골계는 패러디의 3대 요소다. 그러나 30년대 말 고대소설<<춘향전>>을 패러디한 김영랑의 <春香>은 그 문체와 어조가 진지하고 심각해서 전혀 희극적이지 앟다.

내 卞哥보다 殘忍無智하여 春香을 죽였구나

원전의 문맥과는 달리 이몽룡도 변학도와 같이 "잔인한"존재의 반동인물 계열로 왜곡시키고 원래 문맥의 해피 엔딩을 춘향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변형시킨 것은 전혀 희극적이지 않다. 말하자면 패러의 개념은 이런 규범적인 좁은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패러디 개념은 비평적 관심을 초점화하는 '상호텍스트성'에 의하여 재정의되면서 패러디 이론이 더욱 활성화 되고 있다.


-김준오 (시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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