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하여/고은
친구여 함부로 웃지 말자
아직까지는 굳센 슬픔이 우리 것이다
비바람 속에서 웃지 않듯이
캄캄한 밤길에서 웃지 않듯이
고비사막 헤메다가
설미치기 전에는 웃지 않듯이
오늘의 삶으로 웃지 말자
두 눈 부릅뜨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한잔 술 칼이 되어
가슴 속 검은 피 가득 채우자
먼 훗날 아니
먼 훗날 같은 내일이면
북악이 떠나가도록
우리 부둥켜 안고 실컷 울부짖다가
그러다가
쓸쓸히
가슴 속에 잔 물결 미소를 담자
아니 내일 백병전 싸움터에서
죽어가면서 비로소 웃자
친구여
환한 그날의 웃음믈 위하여
오늘은 함부로 웃지 말자
오늘은
웃음보다도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과 뇌성벽력의 싸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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