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제2장 나무를 심읍시다.

능선 정동윤 2011. 9. 24. 00:28

제2장 나무를 심읍시다.

 

 

제1절 식목일의 유래


우리는 식목일을 그저 봄에 나무심는 날로 무의미하게 넘겨 왔으나 식목일은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한날〔문무왕 17년 2월 25일 (양력 4월 5일)이며, 조선 성종대왕이 세자와 문부백관을 거느리고 동대문밖 선농단에 친사하고 적전을 친경한날〔성종 24년 3월 10일(양력 4월 5일)〕로서 청명과 한식날이 이날과 겹치거나 전후하여 있으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의 산이나 들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식목일은 민족사적으로는 통일성업을 완수하고 임금이 몸소 친경의 성전을 거행한 날로서 농림사적으로도 매우 뜻있는 날 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도 나무심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식목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 식목일을 연표로 살펴보면
1910년 : 조선 순종께서 친경제 거행시 친식한 것이 유래
1911년 : 일제치하에서는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함
1946년 : 광복이후 4월 5일을 식목일로 제정하고 기념행사는 서울시에서 주관함
1970년 : 식목일 기념행사를 산림청에서 주관함
1974년 : 산림청 주관하에 각 중앙부처 단위로 식목행사를 실시함
2003년 : 제58회 식목일

 

  1. 옛날에도 나무를 심었나요?

 

신라시대에 최치원선생이 경남 향양군수로 재직할 때 바람피해와 재해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우리나라 조림역사의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풍수사상(風水思想)의 영향 아래 수도가 있는

개성 송악산의 땅기운(地氣)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주로 바람 피해를 예방하거나 땅기운이 약한 곳에 나무를 심어 보호해 주려는 비보(裨補)조림을 통해 숲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경국대전이라는 법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조항을 넣어 백성들의 나무가꾸기를 강조하고 산림관리를 강화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무심기를 강조한 이유는 바다쪽에서 침입하는 외적을 물리칠 병선(兵船)과 당시 국가경영에 필요한 세금이었던 쌀 등 공물(貢物)의 운반에 필요한 선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는 가구도료로서의 옻나무, 종이를 만드는데 쓰이는 닥나무, 누에를 치는 데 쓰이는 뽕나무 및 유실수 등 생활에 필요한 유용수종을 심고 관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밖에도 흉년의 식량부족을 대비하게 위해 상수리나무와 밤나무 등을 심고 가꾸웠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죠.

이렇게 우리 선조들의 나무심기는 선박, 건축재, 연료재, 도구재료, 구황작물 등 경제적으로 유용한 목재 및 산림부산물의 지속적인 확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즉, 나무를 심어 자연력을 복원함으로써 인간생활에 유익하고 윤택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2. 도심속에 나무를 심읍시다

 

흔히 도심 속의 공원이나 숲을 가리켜 도시의 허파라고 합니다.
허파가 없는 사람을 상상할 수 없겠죠? 마찬가지로 녹지가 없는 도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숲은 산소를 방출하고 공기속의 먼지를 걸러내며, 도시의 소음을 감소시켜 줍니다.

50년생 활엽수 한 그루는 열두사람이 숨쉬는 데 필요한 양의 산소를 방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1㏊의 숲은 1년에 약 30톤에서 70톤 가량의 먼지를 공기중에서 걸러내며,

폭 60㎝의 실삼나무 울타리는 4db(데시벨)의 소음을 감소시켜 줍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산과 들에만 나무를 심지말고, 도시 곳곳에도 나무를 심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