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돌 계단/정동윤
서초동 대법원 뒷산 언덕
이삼백 개의 호박돌이 두 줄로
같은 높이의 계단으로 박혀 있다.
한 아름의 지름으로
깬 돌이 아닌 매끈한 자연석으로
하나하나 준수한 풍모를 자랑한다.
이들도 한때는 마을 어귀에
‘축 합격’의 현수막이 걸릴 정도로
고향에서는 수재 소리를 들었다.
물론 수백 년 정자나무와도 같은 항렬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마을의 대표주자로 칭송도 받았다.
손색없는 이들이 대법원 뒷산에서
흰 셔츠에 까만 법복 입은 산까치의
흰 물똥 맞으며 밟히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