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그 자리/천양희

능선 정동윤 2011. 9. 26. 23:34

그 자리/천양희

 

 

욱아, 들어보렴 참나무가 욱욱거리며 강물에

떠내려가는구나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뽐내던 참나무가

그까짓 바람쯤이야 그까짓 비쯤이야 하던

나무가 참, 나무가 아니었구나 올라갈 줄

모르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내려가는구나

자존심은 돌멩이처럼 굴러 곤두박질 치는

구나 끙, 끙끙 갈대밭을 지날 무렵

참나무는 더욱 욱욱거리는구나 그까짓

갈대쯤이야 비웃던 갈대들이

쓰러지지 않는구나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그 자리에 있었구나 욱아,

들어보렴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는구나

고개를 숙이는 자에게 바람은 그냥

지나간다는구나

그렇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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