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오후 세 시/김상미

능선 정동윤 2011. 9. 27. 00:29

오후 세 시/김상미

 

 

오후 세 시의 정적을 견딜 수 없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모든 것 속에서 내가 소음이 된다

로브 그리예의 소설을 읽고 있을 때처럼

의식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라 주변을 어지럽힌다

 

낮 속의 밤

똑 똑 똑

정적이 정적을 유혹하고

권태 혹은 반쯤은 절망을 닮은 멜로디가

문을 두드린다

그걸 느끼는 사람은

무섭게 파고드는 오후 세 시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차를 끓인다

 

너 또한 그렇다

부주의로 허공 속에 찻잔을 떨어뜨린다 해도

순환의 날카로운 기습에 눌려

내면 깊이에서 원하는 대로

차를 마실 것이다

 

공약할 수도 훼손시킬 수도 없는

오후 세 시의 적막

누군가가 일어나 그 순간에 의탁시킨

의식의 후유증을 턴다

그러나 그건 제스처에 불과하다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읽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덮을 때처럼

뚝딱 뚝딱 뚝딱....

그렇게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정적 안에서 소용돌이 치던 정적 또한 지나간다

흐르는 시간의 차임벨 소리에 놀라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자신의 내부

그 끝없는 적막의 두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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