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 주었지요,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캄퐁참,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혀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뉘 교복치마가 펄렁,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머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 작업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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