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2008/문화일보

능선 정동윤 2011. 10. 4. 21:10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 주었지요,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캄퐁참,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혀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뉘 교복치마가 펄렁,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머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 작업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