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역을 나와서 족두리봉 가는 길엔 작은 소공원이 조성되어 계절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은행나무잎의 구조조정하는 시기.냄새가 고약한 열매들 떨어지고 은행잎도 거리에 뒹군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명종된 공룡만이 먹을 수 있었단다. 공룡 이후론 인간이 은행나무를 키운다.
은행나무는 인가 근처에서 자라고 인간에게만 충성하고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
단풍의 날의 지나고, 낙엽의 날이 관통하고 있는 산 중에도 소나무는 변함없이 의연하다.
떡갈나무나 팥배나무가 가을을 남기고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붙잡아도 소나무는 고개 저으며 산을 지킨다.
소나무마저 없다면 북한산은 너무 황량할 것이다.화강암 바위산과 잘 어울리는 소나무다.
족두리봉 오르는 길엔 침울한 쟂빛 가을 하늘이 온 산을 덮으며 가랑비를 뿌리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봉우리도, 능선도, 진달래 이파리도, 노간주나무도,척박한 화강함 바위들도 모처럼 내리는 가을비를 삼키지 못하고
입술을 축이듯 물기를 머금다 뱉어내고 있을 뿐이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산의 경계가 모호하다.이런 날씨를 틈타 지상에 떨어진 수많은 나뭇잎의 영혼들이 하늘로 스며 들지도 모르겠다.
소나무가 대세인 북한산은 화강암의 지층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다른 나무들의 공략을 침엽수로 저지할 것이다
흉물 같은 고압선만은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흐린날의 산색은 무심한 회색이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멈추었지만 나는 배낭커버를 벗기지 않고 그냥 걸었다.
오를 수 없는 아름다운 봉우리보다 다가가면 안아주는 소박한 봉우리가 얼마나 좋은가.
골산이라 딱딱하다고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북한산 산길이다.
비가 그친 산색은 그래도 가을빛 갈색이 넘친다.혼자 걷는 외로운 뒷모습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와 동행이며 그의 눈길이 닿아있다.
한때 붐비며 떠들석했던 이 언덕에서의 기억을 반추하며, 햇살 좋았던 겨울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한 산행들이 아련하다.
오르면 내려가고 모이면 흩어지는 인간사지만 새삼스럽게 가을을 타고 친구들을 그리워해 본디
문득 돌아보면 지나온 길은 아름답게 보인다.사노라면 아픔마저도 나뭇잎처럼 소중하게 피었다 사라진다.
이미 떨어진 나뭇잎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아픔도 나뭇잎처럼 끝까지 머물지는 않는다.
나 혼자만 걸어거는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친구와 함께 가는 산행은 외롭지가 않다.
천 개의 산을 오르기가 어렵다면 한 개의 산을 천 번을 오르자고 생각한 것이 언제였던가
북한산의 봉우리,사찰,성문,기암괴석 그리고 수목들을 관찰 하면서 정리해 두어야 할 것만 같다
천 번의 산행이 남긴 소중한 날에 자료와 알뜰하게 기록한 모습은 우리 까페만의 자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꽁꽁 언 날이 풀린다고, 봄볕이 귓속을 간지럽힌다며 흥분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단풍이 지고 낙엽이라니.
아침에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 여름마냥 푸짐한 땔감을 한 짐 가득히 지고 돌아와서
이제는 매캐한 연기 새어 들어오는 온돌방에 지친 몸 길게 눕히고 몸과 마음을 쉬게하고 싶다.
말라가는 낙엽을 보내고 남아 있는 저 빨간 팥배나무 열매,산을 찾는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고 풍경이 조용히 가라 앉으면
숨어 있던 산새들이 돌아와 나무가 베풀어 주는 성찬을 위해 붉은 열매가 넉넉하게 차려져 있다.
새들의 겨울은 춥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겠다. 나는 왜 배고픔을 자주 느끼고 또 두려워 하는걸까?
요즘 카톨릭 성지 순례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나는 꿈 꾼다. 800KM 의 길을 프랑스에서 스페인 북부로 걸어가는 길,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걷고 걸으며 자신만의 내면으로 깊이 함몰되어 한달 이상 멀리 이국땅에 떨어져서 걷고 싶은 길,
그 길을 꿈 꾸며 오늘도 산티아고 가는 그 길을 걷는 것처럼 걸어본다.
구름과 산이 엉켜붙어도,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어져 하나가 되는 특별한 풍경에도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절경의 그 풍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느끼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름다운 그림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북한산을 읽고 외우며 알아 주려고 각별히 노력할 것이다
바라보고 응시하고 기억하고 반추하며 잠기는 풍경, 연민의 저 뿌옇고 흐릿한 풍경이 가슴 깊이 침잠되어 한 알의 씨앗이 되리라
시월의 마지막 주말에 비를 타고 내리는 가을빛은 잠시 무채색으로 지웠다가 다시 펼치는 추색창연한 산기슭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는 내 가슴은 절절히 가을을 타고 있구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저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한없이 깊이 들어가라,은근히 배어나오는 땀방울 뚝뚝 떨구며 오르라
그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는 심정으로 반성하며 산에서 걸어 천천히 걸어 나오리라.
세파에 엉킨 마음을 빗질하며 가을산에 푹 젖어본다.
승가봉도 역시 바위덩어리다. 두꺼운 바위 틈을 뚫고 나온 소나무들이 오롯리 자리잡고 있는 봉우리.
승가봉은 등산의 목표가 된 적이 거의 없다.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러는 그저그런 봉우리다.
그러나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비봉 능선의 어느 봉우리도 갈 수 없는 필수 코스이다.
수천 수만의 여름들이 떨어져 뒹구는 절벽, 맨손으로 아슬아슬 올랐던 많은 추억들이 서린 곳,문수봉.
이젠 철제 손잡이가 설치되어 위험을 담보해 준다.
지난주 인수봉 고독길을 다녀온 근엽이도 문수봉 절벽이 떨린다고 엄살 부린다.
비에 젖은 바위탓인지 인적이 드물다.풀벌레들도 자취를 감추고 나무들도 수액을 막고 겨울채비를 하는데
한평생 자리에 누워 쉬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직립으로 서서 계절을 보내는 냉철한 절벽이 우리를 맞아준다.
아무리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사소한 빈틈이라도 보이면 즉시 댓가를 보여주는 차가운 이성의 절벽이.
힘겹게 올라서 중턱에 도착했다.길게 불어오는 산바람, 가을바람은 바위틈의 작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지만
아직도 벗겨지지 않는 회색 구름의 하늘엔 산새도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다
바람과 사람만이 오르는 문수봉 절벽을 겨울엔 자주올 지 모르겠다.
어쩌다 찾아온 바람만이 정적을 흔들며 울타리를 넘어 산봉우리로 올라갈 것이고
절벽은 추운 한겨울에는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며 오수를 즐길지도 모른다.
삼국시대의 병사가 거쳐간 이 직립의 길을 우리들 이후, 통일시대의 어느 산꾼들이 또 올라오겠지
멀리 굽이굽이 돌아온 산길이 엄청나게 길게 보이지만 묵묵하고 과묵한 발걸음이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더하여 이곳에 도착했다.
줄지어 늘어 선 풍경 속의 자신을 생각하며 지나 온 능선을 흐뭇하게 내려다 본다
아, 따뜻한 차 한 잔 미처 준비하지 못하였구나.
바위는 바위끼리 모여 산다.밤이면 별빛이나 달빛이 찾아와서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손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나 짙은 그림자 보내어 안부 전하는 구름이 없었다면
바위는 얼마나 적적하고 외로웠을까.아직은 차갑지 않은 바위에 걸터앉아 차 한 잔 마시지 못함이 아쉽구나.
바위 틈틈에 피어있는 소나무는 바위의 사랑을 진솔하게 표현되는 상징이다.
바람에 날아오는 티끌을 모우고 타클라마칸이나 고비시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작은 입자를 모아 솔씨가 발아하도록 기름진 토양을 만든다
흐르는 빗물은 몰아주고 더 고은 햇살을 모을 수 있게 하얗게 하얗게 견뎌주는 바위지만 생색 한 번 내지 않는다.
백운대로 대표되는 최고봉은 지워져 보이지 않고 의상능선의 봉우리는 하늘을 닮아 희미한 실루엣으로 배경이 되고,
자리러질듯 울어대던 여름날의 매미 소리나 끝없이 이어지던 가을 풀벌레 소리가 그립다.
음울한 겨울풍경처럼 흐린 날의 산 풍경이 으스스 하기만 히다.
바위에서 벗어나와 대남문 공터에 도착하니 흙길이 반갑게 느껴진다.울적한 풍경에서 빠져나오니 흘러 간 옛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새 시장이 된 시민운동가가 업적을 남기도록 기다려주고 싶고 자판기의 일회용 커피잔처럼 웃음을 마구 낭비하고 싶다.
당뇨의 진단을 받아 탓엔 술 한잔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는 끝내 참아야 했다.
여정은 대성문을 돌아 평창게곡으로 내려간다. 보현봉 올라가는 길이 트여 있으면 한 번 올라 가 보기로 하였다.
문수봉에 올랐으니 보현봉이 질투하지 않도록 한 번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이곳은 북한산 많은 코스 중에서 가장 고즈늑한 분위기라 생각된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인적이 드물었다.
아마도 산으로 올라어려는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고 평창동 뒷편까지 오르는 불편함이나 교통편이 낯설기 때문이리라.
만인보를 적은 시인 고은씨가 몸 담았다는 일선사는 보현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화려한 시설을 자랑하진 않지만
지친 산객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우물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북한산엔 수많은 사찰이 있어 그 많은 사찰의 순례도 재미있을 것 같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 문화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사찰의 모습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에.
일선사를 나와서 보현봉 올라가는 중턱에 청담샘의 표시가 있어서 보현봉 오르는 길이 트여 있을까 기대하며 올랐지만 봉쇄되어 있었다.
나무는 침엽수와 낙엽수로 나눈다는 가장 기초적인 설명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 내는 카메라맨의 안목을 높이 사며,
흐린 날씨가 오히려 원근감을 살려주어 가을을 더욱 가을답게 알려 주었다
신형 브라운 칼라의 데이아웃 모자가 유행처럼 친구들이 쓰고 다녀서 일부러 오래 되고 낡은 베이지 칼라의 데이아웃 모자를 쓰고 나왔다.
한 친구가 괜히 기분 좋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베풀고 나눔이 수월하지 않는 시절에.....
이곳에서 더운 겉옷을 벗고 잠시 쉬었다가 청담샘을 찾아 올라 갔다.
수질검사가 적정하다는 팻말을 읽고 목을 축인다.바닷길엔 철선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산길은 우리들이 다녀간 발자국을
남겨 두지 않는다.어떤 위대한 사람이 이 청담샘의 맑은 물을 마시고 갔는지 샘은 입을 열지 않는다.
먼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갈증이 나지 않도록 샘은 넉넉히 물을 흘려 준다.
봄날이라면 무릉도원이 아니었을까?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엔 물들지 않고..."
옛날에 죽은 아느 시인이 이곳에 와서 바위가 되었을까?
봄부터 가을까지, 머지 않아 다가올 하얀 겨울까지 바위는 묵묵히 자연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승의 혼잡한 번거러움을 벗은 뒤에 이곳에서 숲의 이야기나 들어주며 또 한 생애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심 좋은 술집의 술잔처럼 수많은 입술이 닿은 술잔의 가장자리처럼,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간 돌의자 쉼터에 앉아 제멋대로 떨어져 뒤섞인 낙엽을 바라본다.
남은 하산길에 허기지지 않도록 마지막 남은 포도송이 따 먹으며 하산을 준비한다.둘이 다녀도 혼자 같은 산행,
이제 조용히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포도를 먹고 머루교를 건너 하산하는 길손,
북아등 528회차 근엽이와 둘이서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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