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아등 576

능선 정동윤 2012. 10. 2. 10:08

 

올 가을은 계수나무 낙엽 냄새가 난다

맑은 가을의 향기가 떨어진 하트 모양의 계수나무 이파리 향처럼 느껴진다.
가을 산문을 열고 수리봉 오르는 대호능선 호강암 속엔
말갛게 씻긴 바위 틈에 부드러운 솜사탕 향이 가득 배어있는 듯 하다

 

산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겠지만
함께 산행하고픈 친구는 맘 먹은 대로 자주 오지 않는다.
보고프다 산에 가자 자주 전화하지도 못하면서
그 친구들 오기를 기다리다가 오늘도 그냥 몇몇이 그 산을 오른다

 

추석을 앞 둔 북한산 바위는 소름처럼 돋아있는 굵은 모래같은 돌기에
가만히 손가락 끝을 대고 잡아 보면 차가운 감촉을 살짝 전한 다음에
따뜻하게 옮아오는 흡사 정 같은 살가움이 전율처럼 파고든다

 

대호능선에서 시작하여 수리봉으로 오르고 향로봉 중턱을 지나 비봉,
그 정상에서 둘러보는 도시의 조망과 겹겹의 산세엔 숱한 역사가 퇴적되어 있다
오늘 먼 산은 가까이 와 있고 눈 앞의 다른 봉우리는 더욱 선명해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와 천천히 걷는 우리들의 산길도 봄바람엔 꽃잎이 날았고
태풍으로 빗줄기 강하게  흩뿌려졌고 어느새 가을바람이 낙엽 휘날리는 시기가 되었다
인생에서의 우리 나이도 추수 끝난 빈 들녘을 오롯이 바라보는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같은 나이다

 

빈 가을 들판처럼 잔잔해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길어진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산꾼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봄날의 눈부신 햇살과 여름의 왕성한 성장을 마무리하고 반추하며
열매 맺고 씨앗 멀리 보낸 뒤 우리들의 감성과 향기로 긴 겨울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산친구 다섯은 승가봉 아래  북쪽으로 뻗은 짧은 능선 자락에 자리 잡고
가을 노래 틀어 놓고 막걸리 잔 돌리며 강남 스타일도 입에 올렸다.
독수리 오형제처럼 북한산을 지키려는 우리도 가을 산의 풍경의 일부가 되어 깊이 스며 들었다

 

한 번 거쳐 온 계절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우리들의 삶,
봄 여름 가을 지나 겨울 앞에 서 있는 우리
사상 유래 없이 길어진 우리들의 겨울을 마냥 추위에 떨 수만은 없다.
축복으로 살아야 할 겨울을 위해 겨울 장비 단단히 챙기고 따뜻한 물도 준비하여
촉촉한 정서와 듬직한 지혜로  혹독한 겨울 산을 꿈결처럼 넘어야겠다.

 

하산은 삼천사 길이 제격이지만
산 아래서 작대기 들고 기다리는 친구가 있어 서둘러 승가사 옆길,

걷기 수월한 길을 택하였다.

 

-정동윤-

 


 

 

 

 

 


 

 

 

 

 

 

 

 

 

 

 

 

 

 

 

 

 

 

 

 

 

 

 

 

 

 

 

 

 

 

 

 

 

 

 

-정선이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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