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능선 정동윤 2014. 2. 21. 08:45

[고전 소개]

중국 황제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무제까지의 중국 고대사 기록서. 인간 위주의 역사 서술 원칙에 따라 그 당시의 철학과 종교, 천문, 지리, 음악 등 인간 사회를 둘러싼 모든 대상을 상세히 풀어냈다. 아울러 인간의 역사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우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자선 등 양자 선택의 길목에서 선 인간을 어떤 선택적 갈등에 직면하게 하고, 그러한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저자] 사마천 (약 BC 145~BC 86)

자 자장(子長). 섬서성(陝西省) 용문(龍門: 현재 韓城縣)시 하양(夏陽)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사마담(司馬談)으로 사마천이 7세 때 아버지가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이 된 이후 무릉(武陵)에 거주하였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린 시절부터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다. 사마천이 약 20세가 되던해 낭중(郎中:황제의 시종)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BC 111년에는 파촉(巴蜀)에 파견되었고, BC 110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그후 2년이 지나 무제의 태사령이 되었고 태산 봉선(封禪: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 의식에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에서 크게 견문을 넓혔고, 《사기》를 저술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기원 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BC 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다.
BC 104년(무제 태초 원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太初曆)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 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BC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그는 환관(宦官)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운신의 폭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기 완성의 정확한 연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기원 전 91년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서한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서한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궁형에 처한 경위와 그에 더욱 분발하여 사기를 저술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은 심경을 고백하였다. 이 편지《보임안서(報任安書)》의 내용으로 보아 사기는 이 시기(기원전 91년)에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사기》의 규모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모두 130권 52만 6천 5백자에 이른다. 사마천은 《사기》가 완성된 2년 후에 사망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이 저서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신상필벌. 벌을 줄때도 줘야 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당당히 밝히고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단지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몇몇사람을 징계한다면 그런 윗사람을 과연 아랫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快刀亂麻(쾌도난마) 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병법가인 손빈(孫?)이 위위구조(圍魏救趙)라는 병법을 통해 동맹국인 趙나라를 구하고자 실타래처럼 얽힌 상황을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력으로 대승을 거둬들인 것을 쾌도난마라 한다. 여기서 리더의 결단력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첫째, 문제 핵심에 대한 판단, 둘째, 정확한 판단력, 셋째,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만약 이 세 가지가 없다면 그것은 만용에 불과하다.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절대역사서 사기...사기의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사마천이라고 생각한다.

30강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게 배울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궁형을 택하면서...본인이 맡았던 책임감으로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그가 가장 위대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사마천은 한나라 조정에서 태사령이란 벼슬에 잇던 사마담의 아들로, 기원 145년에 태어나 기원전 90년 쉰여섯 살을 전후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마천이 살았떤 시대는 하나라의 전성기이자 중국 역사상 몇 되지 않는 전성기였던 무제 때였다. 사마천은 어려서부터 고전을 공부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아버지 사마담의 권유로 견문을 넓히고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기르기 위해 전국을 답사했다.

그러다 서른 여덟 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관이 되어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사마천을 사관 집안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떤 아버지 사마담이 죽기 전 남긴 유언, 즉 역사서의 완성을 필생의 사명으로 물려받았다.

또 아버지의 학문과 사상으로부터도 깊은 영양을 받았다.

사마천은 또 아버지의 권유로 스무 살 무렵 전국을 답사했고, 벼슬살이를 시작한 후로는 무제를 수행하여 전국을 다녔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사기 내용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고 한다.

현장답사와 문헌기록을 변증법적으로 소화해낸 사기의 실증적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절대적인 공감과 삶의 지침서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이 가장 기억에 남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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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3000년 역사서 4000명 이상의 등장 인물 1300개 이상의 직업 기전체의 역사서 김부식 삼국사기에 영향 보통사람들에 대한 이해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노중련이란 인물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노중련은 전국시대 세속을 초탈한 고상한 절개의 유세가로 지금으로 보면 엘리트 지식인이라고 할수 있다.
노중련은 요성 함락시 편지 한통으로 위나라 장수를 자결케하여 성을 쉽게 함락할수있게 하는등 여러 큰 공을 세웠지만, 모든 상을 거절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왕이 노중련에게 상을 내리려 하자 노중련이 상을 거절하면서 답했다고 하는 아래 문장은 그의 사람됨을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천하의 선비가 귀한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고 재난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받는다면 장사꾼과 다를 바 없지요. 나, 노중련은 장사치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 부단한 노력을 통해 지식인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공을 쌓을수는 있어도,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큰 공을 세우기는 쉬운일이 아닐텐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지식인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 듯해서 가슴이 벅찼다.

또 왕이 노중련에게 작위를 내리려고 하자,
“부귀하면서 남에게 눌려 사느니 빈천한 대로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겠다.”라며 바닷가로 달아나 숨어 살았다고 하는 얘기를 통해서 시대를 초월한 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조직은 훌륭한 인재를 필요로 하며, 많은 회사가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인재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건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정의가 제대로 서지 못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재의 능력뿐 아니라, 인재 개인이 지니고 있는 철학도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연상케하는 노중련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기 헌신’을 지 닌 인재가 그리운 이유이다.
사실 우리 회사는 신상필벌이 모호한 조직이다. 상에 있어서는 연공서열식 나눠먹기가 존재하고, 벌에 있어서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감사지적을 많이 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암묵적 동의(?) 같은게 있다.
신상필벌이 어떠하던 대부분의 우리회사직원들은 노중련과 같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맡은바 업무를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여나 본인의 능력에 비해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노중련의 일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중련의 경우를 들어 향후 우리회사가 신상필벌의 원칙이 없는 조직으로 바뀌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은 ‘기우’ 이길 바라며, 우리 모두가 노중련의 삶을 한번 살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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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절대역사서, 절대반지 자살할 권리, 속전 궁형(남자는거세, 여자는 유폐),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본 사기를 수강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한나라의 시조 유방의 최측근 3인 즉, 서한 3걸 중 한사람인 장량을 손 꼽을수 있다.
영웅호걸들의 무대였던 혼돈의 춘추전국 시대에 뛰어난 지략과 시대의 흐름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과 특히 그가 말한 성공하면 그자리에 멈추지않는다라는  "성공불거"와  장량이 공을 크게 세워 그 보답으로 유방이 그에게 한나의 만호를 포상으로 내린다고 했을 때 정중히 사양했다는 "사하만호"를 보면서 장량의 고고하고 욕심없는 청빈한 인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현대 사회 우리의 조직에서도 리더들의 "지지" 즉 높은 영향력과 많은 권한을 갖게 되었을 때 그것에 너무 오래동안 연연하지 말고 물러날때 물러날 줄 아는 장량의 지혜가 필요하고, "사하만호" 의 고사성어 처럼 자신의 본분에 넘치는 욕심은 버릴 줄 알아야 조직원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고 그들이
그 리더를 믿고 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조직에 이러한 리더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조직의 최고 리더인 CEO는 물론, 핵심분야별 책임 리더들과 실무부서의 팀장까지도 장량의 통찰력과 무욕의 경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人文學 文, 史, 哲 100選

1. 司馬 遷의 史記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라.
報任安書에 나오는 이 글은 사마 천의 삶과 정신세계, 감동적인 생사관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면서까지 52만 6,500자 한 글자 한 글자를 피를 토해내듯 완성한 사마 천의 사기는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가, 아니면 하찮은 존재처럼 버려질 수도 있는가의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인간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했지만 초고를 마치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화를 당하게 된 저자. 하지만  완성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 궁형이라는 죽음보다 더 수치스러운 극형을 받고도 오히려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여 명산에 깊이 보관하여 자기 뜻이 이 마을 저 마을로 알려진다면 절대로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한 인간이 전하는 저술의 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엄청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치열함을 견지한 채 살아가야 하는 지, 때론 억울함 속에서도 더 큰 명분을 위해 묵묵히 자기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제 뜻이 제대로 알려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지, 후세에 남겨야 할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를 버리면서까지 그 일을 감당한다는 건 또 어떤 건지. 저자가 가진 생각과 결단은 범인으로서는 감히 따를 수 없는 경지의 일이지만 그런 삶의 가치만은 내 생활에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 특히 큰 감동을 주는 인물은 하본기에 나오는 우임금이다. 우는 아버지 곤이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은 것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노심초사 13년을 밖에서 살면서 집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 먹는 것을 간소하게 하면서도 귀신에게는 정성을 다하고, 집은 허름하였지만 물길을 정비하는 데는 비용과 자재를 아끼지 않았고 왼손에는 물바늘과 먹줄을, 오른손에는 곱자와 걸음쇠를 1년 내내 들고 다니면서 마침내 구주를 나누고, 구도를 개통하고, 구택을 쌓고, 구산을 측량하였다. 우의 치수사업은 그야말로 백성을 향한 우임금의 애민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안락한 집을 뒤로 하고 오로지 백성들의 물길을 제대로 터주기 위한 우의 치수사업은 이 시대의 공직자들, 기업의 오너들이 필히 명심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영달보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자신의 이익보다 사원의 몫을 진심으로 더 챙겨주길  원하는 진정한 기업가의 모습을 여기서 들여다본다.
아래는 이 부분의 원문이다.
勞身焦思
居外十三年
過家門不敢入.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항우본기와 고조본기에 나오는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 아닌가 싶다. 항우와 유방이 벌이는 초한쟁패의 싸움에서는 항우와 유방의 기질적 차이점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항우는 무엇보다 배움에 있어 끝을 보지 못하면서 성급함을 보이는 반면 유방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특유의 뻔뻔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를 삶아 죽이겠다는 항우의 협박에 '삶거든 한 그릇 나눠달라'는 배짱있는 모습이나, '일대일로 결판을 내자'는 항우의 제안에 싸움은 머리로 하는 것이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약을 올리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인재를 활용하는 면에서도 둘은 극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유방은 고비에 처할 때마다 장량, 한신, 진평과 같은 인재의 충고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항우는 반간계에 빠져 최측근의 범증마저 잃는 우를 범하였다. 항우본기는 리더십과 용인술에 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하고, 아홉 개 군의 왕이 되어 팽성에 도읍하면서 초반 기세를 잡아나갔다. 분명히 초반 상황만 본다면 항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또한 홍문연을 비롯해 몇 번이고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함으로써 화근을 남기게 된다. 결국 우미인가를 남기고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책망하지 않은 점은 리더의 덕목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반면 유방은 시종일관 열세에 몰리면서도 민심을 잃지 않고 명분과 정통성을 꾸준히 쌓아나갔다. 또한 삼불여로 대변되는 유방의 인재론은 가히 칭찬할 만한 일이다. 장량, 소하, 한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얘기하면서 자기는 저들보다 못하지만 이들을 쓸 수가 있어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기발한 역설인가!
초한쟁패의 과정을 통해 보면 힘보다는 지혜가, 성급함보다는 느긋함이 승리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잔인함보다는 민심을 얻는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 수가 있다. 하지만 항우가 가진 무식할 정도의 우직함과 우미인가를 부르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목에서는 남자가 가지는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다고 할까? 유방이 오히려 너무 교활한 느낌마저 들어 보이는 건 왜일까?
[사기]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
중국역사의 시조라고 할 만큼 오랜 세월동안 인간사에 많은 교훈과 수많은 사람의 삶의 방향을 제시 해주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될 불멸의 인간학 교과서인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 : 3000년을 내려온 인간학의 교과서」에 대한 강의를 듣고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서한삼걸이라 불리는 한 사람으로서 바로 장량이라는 인물이다.  장량이 삶의 지표로 여긴 “성공불거(成功不居) : 성공하면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와 “지지(知止) : 자기(自己) 분에 지나치지 않도록 그칠 줄을 안다”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닫는 것 같다. 동서고금에서 시기와 절제를 놓쳐서 자신을 힘든 상황으로 만드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성공은 자신이 가진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씩 성장하며 이루어 가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일의 성공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오늘의 성공이라는 말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 배우는 마음과 실천의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해당되고 맞이해야 할 일이 바로 퇴직(은퇴)이라는 생활의 변화를 느끼게 될 순간일 것이다. 아름다운 은퇴는 곧 준비된 은퇴를 의미한다. 준비라는 것은 언제나 물러날 때를 생각하게 되고, 은퇴 후의 일을 구상하고 계획해서 차츰 실현해 가는 과정의 일부라 생각하며 즐거움을 누리고 꿈 꿀 때 가장 행복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준비된 사람만이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이겨 이루는 것이다. 성취는 준비하고 행하여 얻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슬기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삶의 방법은 고전 인문학을 통한 선지식의 지혜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 밖에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에게 늘 강조하는 부분이고, 가정에서도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먼저 행함을 보이는 생활을 해갈 것이다. 지금의 결과는 지난날의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들이다. 미래는 지금의 준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