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부답/이영신
별 불만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죽청리 흰 염소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이 다가와 등을 툭툭 치시더니
시한부 3개월 삶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흰 염소는
집 앞에 면회사절이라 써 붙이고
하필 왜 저입니까?
가슴 쥐어 뜯으며 대들다 뒹굴다 발길질까지 했지만
그 분은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흘은 분노로
또 열흘은 눈물로 나날을 떠밀어 보내던
죽청리 흰 염소
하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도 쓸고
널브러진 술병도 다 치우고
깨끗이 옷매무새 다듬고 귀내까지 걸어가
둑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다
돌아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풀을 한가롭게 뜯었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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