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이상국

능선 정동윤 2012. 6. 1. 23:11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 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히며 저녁을 먹자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묵부답/이영신  (0) 2014.04.04
[스크랩]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0) 2012.12.13
집시의 기도/장금  (0) 2012.05.05
일기/안도현  (0) 2012.02.28
시대의 우울/최영미  (0) 201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