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나면 이 거대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자주 떠날 수가 없기에 이제는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친해지려면 잘 알아야 하고, 잘 알려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의 역사를, 문화를,아픔을 기쁨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딘가로 떠나지 못할 때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서울에 푹 빠져보려고도 한다.
한양도성의 회현동 구간이 복원되었다.
일제 때 일본의 왕세자가 숭례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지저분하다고 성곽을 허물고
새 길을 내면서부터 한양도성은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한양도성은 태조 때부터 축조하여 세종과 숙종 때에 증축하였는데 일제 때 거의 망가졌다.
자주 걸으며 눈여겨 보는 성벽이지만 성곽 상부에 구멍 뚫린 부분이 '여장'이라 불리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서울의 목록만 겨우 읽고 있었기에 앞으로 골고루 읽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연분홍 진달래가 다소곳이 피었다.
봄은 가랑비처럼 와서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새털구름처럼 다가왔다 먹구름처럼 달려든다.
봄꽃에 취해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이 여름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
백범광장 앞의 산수유 꽃이 수줍게 달려있다.
눈치를 보면서 살며시 피어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이 터져버릴 것이다.
산수유하면 지리산 산수유마을의 흑치 처녀들 생각이 난다.
산수유 열매를 따서 과육과 씨앗을 분리할 때 이빨로 빼기 때문이 이가 까맣게 변해서
처녀들이 시집가기 어렵다고 전해진다.
백범광장 북동쪽에 호현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인데
뜰 앞의 매화나무가 무척 청결해 보인다.
우리의 선조들은 벚꽃을 즐겼다는 기록은 없지만 매화는 매우 많다 .
홍매, 백매,와룡매 등등. 나도 벚꽃 보다는 매화가 더 좋다.
왼쪽에는 배롱나무가 다섯 구루가 있는데 아직도 한겨울이다.
배롱나무는 따뜻한 남도에서 올라와서 추운 중부 지방에서 적응하는라 애를 쓴다.
지금은 뿌리내리고 정착하여 중부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한다.
늦봄에 잎을 피우고 늦여름에 꽃을 피운다.
북쪽산책로 입구의 개나리는 지금이 한창이다.
개나리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다.
꽃이 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봐도 섭섭해하지 않으려고,
상처 받지 않으려고 속을 미리 비워두는 것이 아닐까?
봄은 얼른 지나가고 마니까.
내일은 청명이고 모래가 한식이라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 하는데
저 진달래 무더기를 통채로 가져가 산소 옆에 심고 싶다.
참 아늑하고 포근해 보여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
조경용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폭포지만 진달래 개나리가 서로 잘 어울려
봄산을 화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조금 일찍 찾아온 벚꽃이 반갑다.
다음 주쯤 남산의 벚꽃이 만발하면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오래된 벚나무가 쓰러지면 그 자리에 매화나무나 떼죽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봄 가뭄에 먼지가 폴폴 날리던 산길이 어젯밤 비에 촉촉해졌다.
덕분에 공기는 한결 쾌적해졌고 가시거리도 멀어서 북한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겨우내 멈추었던 개울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정원에서 연못의 특징은 방지원도 또는 천원지방.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뜻으로 사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의 한복판에
둥근 섬을 만들어 그 섬에 나무 등을 심어놓는 것이 방법이다.
태종이 만들고 연산군이 즐긴 경복궁 내의 경회루를 보면 알 수 있다.
저 나뭇가지에 초록으로 잎이 짙어지면 서울의 할배 산인 북한산은 볼 수가 없다.
아직도 겨울의 여백이 남아 있어서 먼 풍경이지만 쉽게 눈에 들어온다.
점령군처럼 벚꽃 군단이 몰려 오기 전에 선발대가 먼저 도착한 모양이다.
본대가 도착하면 봄은 가속도가 붙고 금방 여름이 눈 앞에 줄을 서기도 할 것이다.
북한산 보현봉이 남으로 내려와 북악과 응봉으로 다시 솟았다가 청계천으로 낮아진다.
북악과 청계천 사이를 배산임수라 하여 조선의 왕궁이 들어섰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무학대사는 인왕을 주산으로 경복궁을 짓자고 건의한다.
임금은 남쪽을 바라보며 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흥 사대부의 의견을 태조가 채택한다.
천정부지의 기세를 가진 신흥 사대부 앞에서 불교의 승려는 자세를 한껏 낮춘다.
무학대사는 백악을 주산으로 삼으면 장자 상속이 어렵고 200년 후에 큰일이 생길 거라고
800년 전에 신라의 의상대사가 지은 '산수비기'를 인용하며 중얼거린다.
200년 후에 임진왜란이 터졌다.
남산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옥이라면 내 눈에 익숙한 초가지붕이면 좋을텐데 대부분이 기와지붕이다.
초가지붕은 매년 지붕을 다시 이어야 하니 불편하고 볼품이 없어서인지
양반들이 살았던 기와집을 복원하여 옮겨 놓았다.
이리로 내려가면 군사정부 시절 서슬이 퍼랬던 옛 중앙정보부 자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너무 추워 애처러웠는지 봄도 이곳에는 일찍 찾아온 것 같다.
일찍 찾아온 벚꽃들이 당당하다.
일제는 남산의 소나무를 뽑아 전략 물자로 사용하고 그 자리에 벚나무를 심어
봄이 오면 벚꽃 구경을 시키며 일본의 국화를 칭송하고 우리의 문화를 말살시켰다.
친일 청산은 사람도 되지 않았고 문화도 되지 않는 것 같다.
벚꽃놀이는 제주도에 왕벚나무 군락지가 있으니 원래 우리나라의 꽃이라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해의 벚꽃 축제도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주둔지에서 승리를 축하하며
부대를 공개한 뒤부터 매년 벚꽃 잔치가 열린다고.
벚나무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그들의 국화인 벚꽃을 곳곳에 심어 놓고 민심을 유도한 행위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예찬하는 일을 이제는 자제했으면 싶다..
20세기 말 남산의 중앙정보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 터널로 들어오면 제 정신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지금은 서울시 별청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때의 악몽으로 이 터널만 보면 식은 땀을 흘릴 사람이 참 많다.
민속마을 후원 방향으로 돌았다. 워낙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피해서.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기와지붕 잇는 풍경이 있다. 마당에서 반죽한 흙덩어리를 지붕 위로 던지는 그림.
이곳의 지붕은 흙 대신 시멘트를 사용하 것 같다.
광화문도 콘크리트를 사용하며 만든 뒤 한글로 편액을 하사한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에 다시 지었다.
속도 위주의 발상이 지배한 시절도 있었으니까?
한옥마을에서 전철 2호선을 타려면 을지로 3가로 가면 빠르다.
충무로역를 지나 이순신장군이 태어난 건천동을 걸어가면
인도의 바닥에 대리석으로 충무공이 싸운 전투 이름과 거북선을 새겨 놓았다.
먼지와 흙이 끼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왜 위대한 업적을 바닥에 새겨서 지나는 사람마다 밟고 지나가게 했을까?
우리나라 국기를 밟으며 펄펄 뛰는 일본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이순신의 업적을 발로 대신 밟아주니.
자치단체에서 꼭 기념으로 새기고 싶다면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석에 새겨 두었다면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과 더불어
사람도 차도 밟지 않고 관람할 수 있어서 좋을텐데...
이 동네에서는 다섯 살 위인 원균도 살았고
요즈음 방영 중인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도 살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에 칠천량 전투에서 패한
원균의 후손들이 만들었을까 생각하며 실소를 하였다.
단 한 번 패한 전투로 원균은 자신에 세운 수 많은 전투의 승리가
모두 묻혀 버리고 만다.
삼국지의 오나라 장군 주유의 탄식이 생각난다.
하늘은 주유가 낳고 왜 제갈량도 낳았느냐고 한탄하는 대목이...
승장 이순신, 패장 원균이라는 이미지는 역사에 깊게 새겨진다.
강변역 인근의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서
여러 친구들과 즐거운 담소를 마치고
몇몇 친구들은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처럼 줄을 이어 영등포구청역으로 떠나고
나는 잠실철교 아래로 내려와 서울숲, 응봉산, 남산을 목표로 걷기 시작하였다.
수양버들이 늘어졌다.물을 좋아해서 물가에서 잘 자란다.
버드나무는 집안에는 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남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옛날 어느 마을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날 장에 가서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밤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을 보고 밤새 그 여인과 씨름을 하다 쓰러졌다.
이튿날 아침 그 술꾼은 수양버들 아래 시체로 발견되었다.
잠실대교 아래 수중보 하나를 열어 놓았다.
열린 곳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요란하였다.
봄 가뭄이 끝나고 한강의 물이 힘차게 서해로 흘렀으면 좋겠다.
'바다에 이르러 하얀 소금이 되기까지'.
북한산과 한강이 있어서 한양을 이룬다.
북한산을 좋아하는 만큼 한강도 좋아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에 놀라고
강뚝 양편으로 8차선 도로가 달리는데 놀라고
그 옆으로 건축된 수 많은 아파트에 놀라고
아파트에 그려진 그림에 놀란다는 글을 읽었는데
수도에 작은 강을 가진 나라들의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원래 길은 없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그곳을 걸었다.
또 누가 그곳을 따라 걸었다.
그 뒤로 여러 사람이 그곳을 걸었다.
그래서 길이 되었다.
뚝섬 유원지. 모래밭과 버드나무 사이로 뛰어 다니면서 놀던 시절이 생각난다.
멱을 감으로 와서 뭔가 건수를 노리던 곳이 이제는 한강공원으로 바뀌었다.
많은 시민들이 잔디밭에 텐트를 여가를 즐긴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연을 날리지 못해 칭얼된다.
아이 엄마도 전전긍긍이다.
다가가서 연을 높이 날려 주었다. 연줄을 다 풀릴 정도로 높이.
이런 일은 남산에서도 자주 하였기에 쉬운 일이다.
아이와 아이엄마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고 나는 아이에게 연줄을 넘겨 주었다.
아이야, 높이 날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단다. 너도 높이 날아라.
요즘은 한강에서 수영하기가 어렵다. 모래밭은 없어지고 콘크리트 바닥이다.
강물은 깊어졌지만 접근은 어렵다.
강을 바라보며 구경만 할 뿐이다.
절은 산에도 있고 물에도 있네.
호기심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닌 듯 하여 조용히 물러나왔다.
이곳의 전망대에 올라 한동안 강바람을 안으며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막 피기 시작하는 조팝나무꽃이 앙징스럽다.
이른 봄 길섶에 피어나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여주는 친근한 나무다.
서울숲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다 그냥 걸었다.
먹구름 밀려오는 하늘이 수상해서다.
마주 보이는 응봉산이 노랗게 물들었다.
날이 맑으면 물 속에 비친 산그림자가 압권일 것 같은데 흐린 탓인지 선명하지가 않다.
중랑천 아래의 작은 보를 역류하는 물고기들이 꽤 많아서 한참이나 내려다 보았다.
연어의 귀환같은 풍경이 연출되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다.
버드나무 천국이다.
적수녹능이라고.
수양버들은 새순이 나는 가지가 적색에 가깝고 능수버들은 녹색이라고 한다.
금호동 응봉산은 개나리 천국,영변의 약산은 진달래 천국.
3호선 전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마다 눈에 띄는 노란 개나리 산을 바라보면서
기회를 노렸는데 오늘에야 올라가 본다.
작년에는 이 산에서 모감주나무를 발견하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갔었다.
개나리 산에서도 벚꽃이 환하게 피었다.이 산에선 벚꽃도 개나리 아래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마음이 급해졌다.서둘러 산정으로 올라갔다.
남산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빗방울이 굵어졌다.
정상에서 서울숲을 내려다보다가 남산으로 갈까말까 망설였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하여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걷기를 마치기로 했다.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가 왕십리역행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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