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

2015 경향신문

능선 정동윤 2015. 5. 14. 14:12

선수들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전광판이 꺼지더라도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바꿔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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