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아세요?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