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아등 727

능선 정동윤 2015. 8. 24. 08:51

 


 

내일이 처서,여름 바람의 꼬리에 눈꼽만큼의  냉기가 스쳐간다.

햇살이 창살처럼 찔러대지만 흐르는 땀은 한결 줄었다.

바위도 이제는 뿌리부터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용소나무 아래서 쉬다가 물길 따라 올라 가는 길,

여름 한낮에 암컷을 불러대던 매미들의 소리가

한 옥타브 정도 낮아지고 여운은 길어졌다.

일주일의 생애 중 마지막 날인지 들리는 소리가 더욱 처연하다.

매미 소리에 눌려지내던 다른 풀벌레들의 소리가 모처럼 실내악처럼 은은하게 들린다.

 

 

향로봉 가는 길,

더위가 흰머리에 흘러 내리면 같은 거리도 더 멀어 보이고

봉우리는 더욱 높아지고 발걸음은 한결 무거워진다.

 

 

우리들 가슴에 심어져 있는 저 풀빛 소나무 한 그루에도

가을비 뿌리는 상큼한 아침이 찾아오듯이

복사열 달아 오르는 바윗길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니

숨가뿐 언덕도 가볍게 올라 간다.

 

 

 

때로는 평범한 이런 풍경이 잊혀졌던 고향의 뒷산을 떠올린다.

여름방학이 되어 시골 친척집에 내려가

가끔 올라갔던 뒷산의 추억,

그 때 바라보던 풍경처럼 낯익은 산줄기들...

 

살짝 묻어있는 가을을 믿고 간이역을 그냥 통과해 보니

숨이 컥컥 막히고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쉼없이 오르는 선두를 탓하지 않고 더우면 막무가내로  쉬어가면 되는 것이다.

 

풀섶에 숨어있는 수사자의 눈빛으로 무얼 응시하는 것일까?

날카롭던 발톱은 닳아진 등산화 뒤축처럼 무디어졌지만

미세한 소리도 놓지지 않던  귀는 교교한 풀벌레 소리에 집중한다.

 

혼자 빨리 가면 뭐하노?

밥은 같이 묵을텐데,

혼자 빨리 내려가면 뭐하노?

버스는 같이 탈텐데..

 

산은 길을 빌려 주고도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옹이진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도 한참이나 울먹이며 신세 한탄을 한다.

조용히 도닥여주고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

바위 틈에 자란 나무들 일수록 사연은 많고도 많다.

 

저 더운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더운 땀을 잔뜩 뿌려야

체중은 알맞게 줄어들고

발길은 가벼워진다.

 

 

하산길 입구.

지난 겨울 하얀눈이 내렸을 때

비둘기들이 앉았다 간 발자국이 몹시 시려 보였던 그 자리에

지금은 여름 햇살만 눈이 부시게 빛난다.

 

 

살을 에는 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걷던 능선에서

빨리 봄이 오면 정말 좋을 거라고 기다리며 걷던 길,

이제는 이 여름만 지나면 정말 좋을 거라며 자위하며

우리처럼 가을을 기다리는 바위의 등을 타고 내려간다.

 

경사진 바윗길도 위에서 보면 평지 같다.

우리의 삶의 하산 길도 이렇게 수월하면 얼마나 좋을까?

올라 오는 사람들의 굵은 땀방울을 보노라면

하산의 기쁨은 배가 된다.아,길고 안전한 인생의 하산길을...

 

도전하는 기분으로 뙤양볕에 맞서서 자리를 폈다.

한참 점심을 먹다가 얼른 나무 그늘로 피한다.

오래 남아 햇살을 즐기던 천수의 코끝만 빨갛게 탔다.

자연에는 도전보다 순응이다.

 

여름 오후의 햇살을 피하여 잠시 눈을 붙혀보지만

시계는 오후 5시를 향하여 쉬지 않고 달린다.

휴전선에 설치한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그 시간쯤 뭔가를 터뜨릴 것 같은 심각한 분위기.

 

총과 총이 마주 향하고 바다와 하늘이 출렁거리고

민심은 얼어붙고, 긴장으로 날카로운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우리가 이렇게 한껏 여유를 부리는 것은

또 한 번 늑대 소년의 외침으로 여겨서겠지.

 

그만 일어서자,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 가야지

자연 속에 묻어두었던 우리의 영혼을 다시 찾아 떠나온 도시로 내려가자

우리 보다 먼저 찾아왔다 씁쓸하게 돌아간 부부처럼 우리도 이곳을 나가자.

 

숲 속의 섬같은 바위를 떠나

다시 일주일을 망각 속에 보내고

다음 주에는 사막보다 오아시스같이 시원하기를 기대하며 하산한다

 

 

오래 전,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경사진 바위를 두려워했고 풍부한 계곡물에 감탄하여

부끄러운 줄 모르고 뛰어들곤 하였는데

이제는 줄어든 계곡물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왔다.

그 놀라운 처음의 짜릿함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면서 줄 잡고 내려오던 가뿐 숨소리가

이제는 한낱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벼워졌다.

 

 

빈 집들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 소리가 들려오면

겸손해 보이는 이 마을도

느티나무의 그늘처럼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 먹었던 스타봉스 팥빙수 팔던 차는 닫혀있어서

그냥 느티나무 정자 아래 쉬었다 간다.

직박구리를 발견하여 사진을 부탁했더니 금방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느티나무는 모아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워낙 가지를 옆으로 잘 뻗기 때문에 옆의 나무와 부대끼면

삶을 포기 한다. 그래서 따로 심어두면 잘 자란다. 배롱나무도 비슷하다.

지금 이 나무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아 우리처럼 더위를 달래고 있는 중이다.

 

 

요즘 은평 한옥마을이 한창 조성 되어지고 있다.

자.가자. 가을 코스모스 휴대폰에 곱게 담아서.

이제는 뜬 구름도 외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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