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사라진 숲이 조용하다.
그 자리에 숨어있는 풀벌레들의 부지런한 교신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들린다.
더위도 한풀 꺾여서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봄부터 뜨거워진 바위도 이제부터는 조금씩 식어 가리라.
우리의 생애를 단 하루로 압축한다면
지금의 우리는 오후 6시의 삶,
막 퇴근을 하고 일터에서 나오는 중이다.
어떤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 할 때
나는 60대는 저녁 6시, 70대는 저녁 7시라 생각하였다.
저녁 6시의 삶은 황금빛 노을을 볼 수도 있고,
화려한 전등 아래서 격조있는 만찬을 즐길 수도 있다.
가뭄에 타버린 갈색의 떡갈나무 이파리처럼
잿빛 깃털 하나가 소리없이 날아와
발 아래 살며시 내려 앉는다.
깃털은 다시 소슬바람에 휩쓸려
바위 아래로 굴러가다 사라진다.
고양이 한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다
숲으로 재빨리 들어가 숨어버린다.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로 고양이과 특유의
도도한 일자 걸음으로 왔다가
멈칫, 멈추어 서서
한동안 나를 응시하더니 옆으로 휙 사라졌다.
뒤이어 놀란 직박구리 한 마리가 삑삑 소리지르며
고양이가 들어간 숲으로 쫓아갔다.
멀리서부터 나뭇가지에 앉았다 다시 날기를 반복하며
고양이 뒤를 따라온 것 같다.
필경 저 숲 속에서 뭔가 큰 사고가 있었으리라.
공기는 쾌적하고 수목들도 잠이 깨어
고요한 분위기를 즐기는 아침 나절,
구름도 한가롭게 바위 위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이 평화스러운 풍경 속에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준엄하게 적용되고 있었나보다.
이 고개를 넘어오기 전에 말벌 한 마리가
길섶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많은 개미들이 말벌에게 달려들어 분해하고 있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인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독침을 쏠 수 있는 말벌이
미미한 개미에 둘러싸여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먹고 먹히는 야생의 법칙,
많으면 솎아내고 부족하면 채워지는 숲에서
팔월에 병엽이 되어 말라 떨어지는 나뭇잎,
포식자에게 가족을 빼앗긴 약한 짐승의 울부짖음,
결국은 분해가 되고마는 곤충 시체들이 즐비한 숲으로
저녁 6시의 삶이 지나간다.
아무리 더운 햇살에도 함부로 두꺼운 옷을 벗지않고
위엄을 지키는 나무들도
가을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화려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에는 아예 나목이 되어버린다.
나무는 아무리 추워도 불을 쬐지 않는다.
나무들도 추워서 벌벌 떨다 잠이 드는 밤이면
태고의 삶을 고수하며 고뇌하는 바위들의 신음소리가
밤새 웅웅 거린다.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거나
능선에서 산아래 풍경을 조망하는 우리도
이제는 나무와 바위처럼 산의 일부가 되어간다.
한 때 땅 속에서 물길을 다투던 뿌리도
땅 위로 노출되면 하는 일이 바뀐다.
정년을 마치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보듯이
저 뿌리들은 공기뿌리로 변신하여
물 대신 공기를 흡입하는 단순한 일을 한다.
저 뿌리에 흙을 덮으면 나무는 고사하기 쉽다.
아무리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도
산 속에 핀 망초 한 송이 말려버리지 못하였고
태풍으로 온 산을 뒤흔들어도
바위에 박한 작은 소나무 한 그루 뽑아내지 못하였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폭우도
허공에 매달린 콩나물 껍질 같은
반달 한 조각 쓸어내지 못한 채 올 여름은 가고 있다.
잠자리 들 때 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저녁 6시의 삶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바람과 풀과 나무의 그림자와 함께 지난 추억을
물처럼 흘려 보낸다.
이제부터 나도 당뇨로 당당거리지 않고,
당에 구속되지 않고 당당하게 지내려면
운동을 많이 하고 등산을 자주하는 수 밖에 없다.
머뭇거리지 않고,흔들리지 않고,젖지도 않으며
밤 늦도록 뒤척거려 보지 않고
살아 온 삶이 있을까?
연탄불처럼,양초처럼,장작불처럼,
때로는 아궁이 불처럼
뜨거운 불꽃 태우지 않았던 삶이 과연 있었을까?
많은 산 중에서 하나의 산만 고집하고
그 산을 천 번 이상 오르는 각오로
언젠가 꼭 하고 말 생애 가장 화려한 산행을 꿈꾸며
매주 건강을 저축하고
시간과 돈을 낭비되지 않도록 애를 쓴다.
오늘도 알프스 산 속을 걸으며 이국적인 낯선 풍경을
한 보따리 전송해 준 한주의 사진에 열광한다.
저 먼 딴 세상에 존재하는 원시의 산 모습에 대리 만족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산림욕을 즐기고 있다.
아직도 붉은 병꽃나무가 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맘 때는 까만 열매를 맺으며
다가 올 가을을 준비해야 하지만
여름 늦게까지 현업에 남아 꽃을 피우고 있어도
결코 추해 보이거나 흉하지가 않다.
오후의 햇살이 등을 민다.
어서 내려 가라고 등을 밀아낸다.
하산길 바람이 다가와 다음 주 까지 견뎌 낼
배낭 가득 일주일치의 쾌적을 담아준다.
9월에는 결혼식이 많아
주말마다 찾아 오기가 어려운데 어떡하나?.
나는 북한산 이 외에 또 다른 산을 찾아
자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도 이따금 이 산에 찾아오면
지치고 구멍 난 삶을 때워주며
든든하게 뒤를 봐 주었기에
오랫동안 이 산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완만한 절벽을 평지처럼 걸으니
여름 햇살이 온몸을 끌어당기지만
하산의 발길은 멈추지 않는다.
산 아래 기다리는 친구들과 만나
당구공 부딪치는 소리, 밀고 당기는 것은
우리도 팔월의 붉은 병꽃나무 꽃처럼
쉬 지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이 미끄러지듯 계곡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도 계곡은 조금 남은 물로 갈증을 달래며
바위는 더위를 견딘다.
떨어져도 품위를 잃지않는 동백꽃처럼
오늘은 이 뜨거운 바위에게
팥빙수 같은 편지라도 남겨두고 갈까.
그냥 가자!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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