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두릅나무
높이 일 미터도 되지 않은 삶
온몸에 뾰족한 가시를 달고
햇살 밝은 숲에 숨어
조용히 새순을 키웠다.
벚꽃 잔치 요란한 봄날
꽃향기에 취한 해 질 무렵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어느 부지런한 할머니 손인지
우악스러운 동네 아저씨 손인지
순식간에 칼날처럼 날아와
댕강댕강 잘리고 말았다.
올해도 새순 없이 자라는
비운을 겪을까 봐
겨우내 노심초사했지만
타고난 향기마저 지울 순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 가시만으로는
포식의 인간을 넘을 수 없다고
일찍이 깨달았기에
머리와 꼬리를 바꾸어 놓았다.
도마뱀처럼 꼬리가 잘려도
부드러운 향기를 묻혀
최고의 포식자에 살짝 내어주고
목숨 살리는 비책은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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