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비운의 두릅나무

능선 정동윤 2019. 5. 18. 07:42

비운의 두릅나무

 

 

 

높이 일 미터도 되지 않은 삶

온몸에 뾰족한 가시를 달고

햇살 밝은 숲에 숨어

조용히 새순을 키웠다.

 

벚꽃 잔치 요란한 봄날

꽃향기에 취한 해 질 무렵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어느 부지런한 할머니 손인지

우악스러운 동네 아저씨 손인지

순식간에 칼날처럼 날아와

댕강댕강 잘리고 말았다.

 

올해도 새순 없이 자라는

비운을 겪을까 봐

겨우내 노심초사했지만

타고난 향기마저 지울 순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 가시만으로는

포식의 인간을 넘을 수 없다고

일찍이 깨달았기에

머리와 꼬리를 바꾸어 놓았다.

 

도마뱀처럼 꼬리가 잘려도

부드러운 향기를 묻혀

최고의 포식자에 살짝 내어주고

목숨 살리는 비책은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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