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태안 솔향기길

능선 정동윤 2019. 5. 19. 14:38

태안 솔향기길

 

 

나쁜 날씨란 없다

나쁜 복장이 있을 뿐.

 

6월 30일 한 해의 절반인 시점에

우린 태안 솔향기길로 소풍을 갔다.

일기예보는 오후부터 비였지만

우린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모두 우산, 우의를 챙겨왔으며 36명이

사당역에 인근 모여서 버스를 타고

태안 꾸지나무골로 향하여

버스는 그다지 막힘없이 내달았다

 

2007 년 유조선 충돌사고로

온 해변이 기름투성이가 되었고,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기름 제거 작업을

도왔던 곳이 이 바닷가였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복원되었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악몽처럼 떠오르는 기름을 뒤집어 쓴

새처럼 바다의 오염은 처참하였다.

 

꾸지나무골에서 만대항까지 약 10km,

약 3시간을 목표로 걷기에 나섰다.

모랫길, 오솔길, 돌길, 숲길 걸으며

도중에 엉겅퀴꽃. 붓꽃. 큰까치수염,

대나무, 애기똥풀, 꾸지나무, 곰솔

등을 살펴보면서 유월의 더위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어 갔다.

이곳의 키 큰 나무들도 10년 전의

태안의 푸른 바다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신음하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리라

 

다리가 불편한 친구 몇몇은 꽤 걷다가

식당의 봉고차로 먼저 떠났고 또

몇몇은 길을 잘못 선택하여 너무 일찍

완주하였고, 어떤 친구는 다리에 쥐가

나서 상당히 고전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삼삼오오 우리는 대오를 이었다

끊었다 하면서 평균 65세의 건강을

바다 풍경에, 솔향기에, 진한 우정에

버무리면서 힘든 줄 모르며 걸었다.

 

드디어 걷기를 마치고

푸짐한 해산물 식탁을 마주하며

술을 따르면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단체여행의 묘미는 역시 먹는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즈음

한 친구는 식당에서 다른 손님이

그의 신을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CCTV를 검색하고, 가져간 사람을

겨우 찾아내고,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만나서 되찾기도 하였다.

 

해미읍성에 들러 150년 전 천주교의

탄압을 지켜본 회화나무를 한참이나

우러러보기도 하고 읍성 안을 천천히

걸으며 500년 세월을 들여다보았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면서

어느 정신없는 독재자의 만용으로

거대한 무덤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개인적 삶이 희생되었는지

그 증거물이 바로 피라미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42개 조선의 왕릉도

그 논리라면 왕릉 조성 단계에서

아주 많은 피와 땀이 서민들의

희생으로 쌓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서쪽으로 지는 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우리의 나이를

생각해 보았다. 저기 지는 노을처럼

우리의 황혼도 저리 아름다울까?

오늘 걸은 솔향기길의 오솔길보다,

만대항 식당의 푸짐한 먹거리보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창 밖 풍경보다,

해미읍성의 아프고 여린 역사보다,

자주 우릴 괴롭히는 일기예보 보다,

지는 저녁해의 붉은 노을이 더 깊게

각인되어 여름 밤의 늦은 귀가 길은

철학자처럼 명상에 잠기게 하였다.

 

몇 년 뒤 졸업 50 주년에는

어떤 소풍을 갈까?

부산으로 가서 페리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자 할까?

북쪽 육로로 가서 교가에 나오는

불함산(백두산)으로 가자 할까?

 

아무튼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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