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한산 다녀오는 길에

능선 정동윤 2019. 5. 19. 21:31

북한산 다녀오는 길에

 

마른 저수지를 바라보는 애타는

농부들처럼 오랜 가뭄에 시달리다

몇 주 째 주말마다 내리는 비에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으로

참고 지낸 보답인지

오늘에야 모처럼 청명한 하늘을

북한산에 넉넉하게 풀어주었다.

 

좁은 한양의 주산이 북악산이라면

넓은 서울의 주산은 북한산일 것이다.

이제 즐겨 다니는 북한산은

등산으로 찾지 않고, 산책으로 친구와 함께

거닐어보는 좀 긴 산책의 숲길과

바윗길로 생각된다.

 

주말마다 바위를 오르내리며

담소를 나누고 쉴 곳을 찾아 간식을 권하며

자연이 주는 풍광에 지친 심신을

정갈하게 씻고 나온다.

 

가을 산은 햇살을 한 꺼풀 벗겨내고

풍경을 바라보아야 좋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을 지워야

나뭇잎이 품고 있는 고유의 붉고 노란

색깔이 오롯이 묻어나는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전혀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이나 흐린 날의

단풍도 정말 곱게 보인다.

 

오늘은 여섯 명이 느긋하게 산책을

한 뒤, 독박골의 막국숫집에서

간단히 뒤풀이 하였다.

뒤풀이를 마치고 나만 혼자서

구기터널을 지나 세검정, 백사실계곡,

창의문, 수성동계곡, 인왕산 자락길,

사직동원,덕수궁 돌담길, 남대문,

남산까지 걸어서 집에 왔다.

 

함께 즐기는 여락도 좋지만

혼자 빠져드는 독락도 괜찮다.

 

세검정,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반정의 공신 이 귀,김 류가 검을 씻고 창의문을 통해 경복궁에 난입한

이야기가 전해져서 검을 씻은 정자,

세검정을 지나면서

조선 시대에는 선왕이 죽으면 실록청을 세우고 임금 재위 시, 시정기와

사관이 기록한 사초(史草)를 비롯한

다양한 공사 자료를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했다.

세검정은 실록이 완성되면 그때 쓰인

사초의 글(검정 먹물)을 씻는 곳이었다.

그래서 세검정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을

다시 상기해 본다.

 

백사실 계곡,

권율 장군의 사위가 된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는 백사실 계곡으로 천천히 오르는 길은

상수리나무의 낙엽이 눈처럼 쌓여 있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푹신푹신하였다.

'백석동천'이라는 표시석을 지나

자하문까지 올라가는 길의 나무들은

가을로 흠뻑 물들여 있었고

낮은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깊은 고요에 잠겨있었다.

요즘 자하문 일대는

까페촌으로 부상하고 있다.

원래 불교에서는 안양문,자하문을

지나면 불국의 세상이라 한다는데.

 

수성동계곡,

북악과 인왕을 잇는 스카이웨이로

단숨에 인왕산 아래로 빨려 들어가

인왕산 자락길로 찾아가면 수성동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수성궁(壽城宮)이 있던 곳이

수성동(水聲洞)계곡으로 불리는 것은

발음이 같아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통인시장이 있는 서촌 방향으로

내려가고픈 충동을 억제하고

남쪽 방향인 사직공원을 목표로 걸어가면

청계천 물의 시작점인 수성동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맘껏 즐길 수 있으나

지금은 가뭄으로 건천이 되어 있었다.

정조대왕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귀를 씻었다고 하셨는데 이곳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셨으리라.

한 때 필운산으로도 불렸던 인왕산은

겸재 정산이 그린 '인왕제색도'처럼

옛 선비들이 소풍으로 수성동 계곡에

자주 찾아와서 시와 글을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풍류를 즐긴 곳이다.

 

서촌,

1930년대 도시형 한옥으로 집장사들이

대량으로 기와집을 지어 판 북촌한옥마을에는

사대부들이 많이 살았으나

이곳 인왕산 아래는 양반 중에서도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세종이 된 "이도"도 이 지역에서 태어났고

안평대군이나 안동 김씨 등

세도가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고관대작들의 정자가 많아서 누상동

누하동 이라는 동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사직단,

인왕스카이웨이와 자락길이 자주 겹치기도

하지만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

조경 전문가의 이야기처럼 산길은 휘어지고

굽어지고 걷다보면 사직동이 나온다.

땅을 주재하는 토신과 곡식을 주재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왕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인데 최근 대통령을 출마했던

부자 정치인의 부인이 사직단의 재정비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고 들었다.

힐러리와 클린턴이 차를 타고 가다가

힐러리의 옛날 애인이 경영하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되었는데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당신은 주유소 주인의

부인이 됐을 거라고 농담을 하자

힐러리는 저 사람과 결혼했으면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거라 응수했다는데...

 

정동길,

사직공원에서 정동길로 가면 이화학당,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라가 한국 최초로

지은 개신교 교회인 정동교회를 지나고

또 덕수궁을 만난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초기에 학생들의 모집이

어려워서 귀한 담배를 준다고 홍보하여

도포와 갓을 쓴 학생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고. 나중에 금연을 실시하며 담배를 주지 않자

학생들은 '동맹휴업' 하였다고 한다.

이화학당도 여학생들의 이름이 없어

맨처음 입학한 학생부터 이름을 퍼스트.세컨드.써드라고...

 

덕수궁 돌담길,

또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은 덕수궁 인근에 법원이 있어서

이혼하려는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서

법원에 가야하고 법원에서 이혼을 하고

나왔으니...

또 다른 속설은 연애하던 이화학당 여학생과

배재학당 학생이 이 길로 함께 등교하다가

정동교회 앞에서 헤어져 각자의 학교로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남대문,

넓었던 경운궁이 좁은 덕수궁으로 변해버린

대한문을 지나가면서 정권 퇴진 데모대의

날카로운 고성에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였다.

일본 황태자가 조선을 방문하여 숭례문으로

고개 숙여 들어가기 싫다고 하여

숭례문을 없애버리려다가 서쪽 성곽을 허물어 길을 내고부터는 한양도성의 성곽은

본격적으로 파손되기 시작하였다.

 

내부 분열로 외세에 밀리면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하는 걱정을 하면서

남산 아래 도착했다.

 

*2016년 가을에 씀.

ㅡ정동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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