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길 위에서의 생각/류시화

능선 정동윤 2011. 8. 17. 15:11

길 위에서의 생각/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 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 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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