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이 저물어 가는구나
잘 있거라, 인왕산 숲아
나도 이제 내 동굴로 가야겠다.
세 계절 아침마다
뜨거운 물 끓여주던 전기 포터야,
막사 앞 뜰에 그림자로 내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 듬직한 벚나무야
참 고마웠다, 잘 있거라
매일 아침 초소 바닥을
닦아내던 긴 대걸레야,
골짜기 타고 조심스레 내려와
창문 두드리던 산들바람아,
팽나무 가지 위에서
아침 인사 나누던 어린 까치들아,
즐거웠다, 모두 잘 있거라
이제 이 막사를 떠날란다
혼자 산속에 남아 있어도
외로워하지 마라
주말이면 인왕산 지킴이들
서리 내린 오솔길, 숲속의 탁자로
반갑게 찾아 줄 거야
따스한 커피 마시며
숲의 변화를 읽어가다
아이들 눈빛으로 바라보고
고단한 사람들과 미소 나누었던
그런 날들이 너무 그리울 거야
잘 있거라
봄 여름 가을 함께 보냈으니
겨울엔 내 은신처로 돌아가
조여진 너트 풀고 책을 읽으며
다시 봄을 기다려야겠구나.
올겨울에도
내 서재 남산, 용산 도서관이
날 기다려 줄 지 궁금하지만
그래도 남산은 열려있으니
솔숲 거닐며 여행도 꿈꾸련다.
인왕산 숲아 너도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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