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하의 날씨
출근길에
주춤주춤 걸어가는
한 노인이 보였다.
검정 비닐봉지를
간신히 들고
가다 서다 반복하며
힘겹게 걷고 있었다
지나치며 본
굽은 등 펴고 서 있는
노인의 검정 비닐봉지엔
초록병이 하나 보였다.
고된 세월의 위로
초록의 소주 병 하나
주둥이 바짝 세운 채
입을 막고 떨고 있었다.
날씨는 춥고
얇은 옷의 노인도 춥고
비닐봉지 속 소주 병도 춥고
나도 추워 종종 걸었다.
아마도 쪽방촌 작은 골목
냉방 이불 속에서
노인의 초록병 알코올은
좁아진 혈관으로 졸졸 흐르리라.
'나의 이야기(市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산책 (0) | 2020.12.06 |
---|---|
가랑잎의 항변 (0) | 2020.12.06 |
서울로 7017 (0) | 2020.12.01 |
미리 보내는 인사 (0) | 2020.12.01 |
물든 나뭇잎 모으며 (0) | 2020.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