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한 장의 사진/정동윤

능선 정동윤 2021. 4. 29. 05:43




한 장의 사진/정동윤

모두 딴청 하는 듯 보였다
이야기는 사랑의 신 에로스가
프시케의 의심으로
뜨거운 기름 방울이 가슴에 떨어져
깜짝 잠이 깬 뒤에
"사랑에 믿음이 없으면
영혼이 깃들지 못하는 거야" 하면서
에로스가 하늘로 날아간 쪽을 향해
막대기를 파란하늘로 가리켰다

아이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들어 막대기가 가리킨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녀석들 잘 듣고 있구먼'
아프로디테의 심부름으로 가져가는
지하의 여왕 페르세포네의
화장품 상자를 조금 열어보자
잠의 씨들이 쏟아져 나와
호기심 많은 프시케를 감싸고
공주는 영원히 잠이 들어버렸다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
에로스가 나타나
아름다운 날개를 접고
프시케에 다가가 키스를 하면
잠에서 깨어나는 숲속의 공주,
아이들도 이야기에서 깨어나고....

그리스 신화를 마치고
내 막대기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남은 언덕을 마저 올라
유아숲 쪽으로 신나게 내려갔다.
4월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지난 3월은 다이달로스와 미궁
5월은 파에톤과 태양 마차.

만 4~5세 아이들이
약 15~20분간 꼼짝없이 앉아 있는 건
기적에 가깝다.
내 막대기는 제우스의 홀처럼
아이들 선망의 대상이 된다.
창이 되고 칼이 되고
붓이 되고 신의 상징이 되어
내 막대기를 뺏으려 덤빈다.

가끔 막대기를 빼앗겨 주면
아이들은 하늘 끝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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