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정지용
넓은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에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어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는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도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섬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봄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수도/신석정 (0) | 2011.08.19 |
---|---|
파초우/조지훈 (0) | 2011.08.19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0) | 2011.08.19 |
파초/김동명 (0) | 2011.08.19 |
조그만 사랑노래/황동규 (0) | 2011.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