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맨발/문태준

능선 정동윤 2011. 8. 22. 15:17

맨발/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도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을 멎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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