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캐비넷/진영대

능선 정동윤 2011. 8. 24. 14:02

캐비넷/진영대

 

 

사무실 한 켠에 낡은 캐비넷 하나 있다

칠이 벗겨져 녹물이 흐르고

상처가 깊다.그의 몸에

귀를 대고 다이얼을 돌리면

그때마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언젠가 그를 열었던 적이 있다

다시 오마, 하고 그를 닫아버리며

비밀번호마저 그의 몸 속에 집어넣고

닫아버려서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그동안 구석구석 녹물이 흘렀다

끝끝내 비밀번호를 알 수 없는 나에겐

열어주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벽을 느낀다

나에게는 그런 비밀번호 하나가 있어서

녹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열어줄 때까지

사무실 한 켠, 나는 캐비넷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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