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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기형도

능선 정동윤 2011. 8. 28. 16:43

바람의 집/기형도

 

 

내 유년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른 무를

깍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단다. 자정 지나 앞마당엔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 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폴폴 수십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