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기형도
내 유년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른 무를
깍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단다. 자정 지나 앞마당엔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 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폴폴 수십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