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이향
강 건너 쌍림동단 쪽에서 깃털에 따스함 숨기고
쇠기러기 한 떼가 북국으로 날아간다
뭉텅뭉텅 욕설 게워내는 굴뚝 위로
폭설이 내려 세상의 길을 질척거린다
눈발에 못 이긴 나무들 길게 휘어지고
섬유공장 연사실 대낮에도 알전구가 껌뻑거린다
서른 두 살의 조선족 김금화씨는
귀마개 꽁꽁 틀어 막아도 눈내리는 소리 들린다
윙윙대는 기계소리가 푸른 뽕잎 갉아먹고
다급하게 실 토해내는 고치를 만든다
고치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수천마리 나비가 되어 꿈 속을 날아다닌다
몰래 숨겨 둔 적금통장에는
삼만 원 미만의 싸락눈이 하얗게 쌓인다
두고 온 북국 눈밭에 파묻힌 무도
연초록 싹 내밀어 봄을 기다리겠지
막내의 바짓단도 겨울해만큼 짧아졌는지
더 자랄 데 없어 서걱이는 강둑의 갈대가
그리움에 얼굴 묻고 우는 저녁
젖몸살로 뒤척이다 뱉아놓은 보라빛 한숨
한가닥 물고 북국으로 날아가는
저 쇠기러기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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