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2/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인생을 부등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다시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 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 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 가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짜피 잘못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 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나희덕 (0) | 2011.09.08 |
---|---|
시간의 구멍/홍영철 (0) | 2011.09.08 |
모항으로 가는 길/안도현 (0) | 2011.09.08 |
사십대/고정희 (0) | 2011.09.08 |
실업/여림 (0) | 201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