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하늘/김석규
철새 돌아오는 때를 알아 누가 하늘 대문을 열어 놓았나
태풍에 허리를 다친 풀잎들은 시든 채 오솔길을 걷고
황홀했던 구름의 흰 궁전도 하나 둘 스러져 간 강변
시월 하늘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챙겨 들고 나가 봐야겠다
풀밭/김석규
해 설핏하면 풀밭에 나가 뒹굴었다.
힘없고 가난해서 정다운 풀잎의 마을
청솔가지 타는 연기 냄새
뿌리 쪽에서 숟가락 딸각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양잿물 먹고 죽은 사람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어두워오는 속에 하얀 이빨 드러나는
아직 한 번도 이름 부르지 않은 풀꽃
머리 위에 묻어 있는 노란 가루를 털어주며
이 세상 가장 귀중한 목숨
착하게 살아라. 오래 오래 살아라.
여윈 볼이라도 마구 비벼대고 싶은 저녁 때
자전거 뒤에다 어머니를 태우고 가는 중학생도 보인다.
백성의 흰 옷/김석규
산모롱이 돌아가는 황토빛에 그을어진다
빳빳한 옷고름은 햇빛에도 풀이 죽어 풀리고
구름과 바람에도 쉽게 헝클리고
어둠의 몇 만리 소리 없이 흘러가는 강물빛
밟히고 찢기고 또 시달리면서 땅에 끌린다
속절없이 흙탕이 된다
까마귀가 까욱거려도 벌벌 떨고
헛기침 소리에도 숨을 곳부터 찾는
어쩔 바 몰라 쩔쩔매는 한 세상
일 년 내내 날 저물도록 나부대는
때 묻은 목숨의 한 자락이 펄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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