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김기택
수박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난 그의 입에서
대여섯 개의 수박씨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벙어리 장갑처럼 뭉퉁한 혀는
이빨 사이에서 힘차게 으깨지는 수박 속에서
정확하게 씨를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박을 먹으며 그는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그가 수박씨 다음으로 내뱉는 말들이
수박 파편들을 피해가며 정확한 발음을 내도록
혀는 쉴새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작은 입으로 갈비와 맥주와 냉면이 들어가고
수박까지 남김없이 다 들어간 것은
입구멍 안에 어둡게 숨어있는 혀 탓일 것이다
먹을만큼 먹어 더 먹을 마음이 없어진 혀는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는 두툼한 손바닥처럼
이와 입술을 오랫동안 정성껏 홡아 주었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난 그는
개고기 끝내주는 집이 있는데 다음엔 거기 가자고
차만 안 막히면 한 시간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중복 점심에는 다른 약속하지 말라고
혀로 입맛을 다시며 내게 다짐을 받아 두었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이생진 (0) | 2011.09.16 |
---|---|
물개의 집에서/문정희 (0) | 2011.09.16 |
첫 나뭇가지/나희덕 (0) | 2011.09.16 |
꿈에 크게 취함/이면우 (0) | 2011.09.16 |
하늘을 나는 쥐/유하 (0) | 201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