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첫 나뭇가지/나희덕

능선 정동윤 2011. 9. 16. 16:08

첫 나뭇가지/나희덕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

산 나뭇가지 사이에 내려놓을 때

그것은 어떤 시작의 순간인가

 

그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오래 두리번거리던 까치 한 마리

이미 두 집이나 세들어 사는 마루나무에게로 날아간다

첫 나뭇가지를 물고

 

이 가지를 어디에 내려놓을 것인가

전세금 사십만 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와

육교 위에서 중얼거리던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왜 진흙과 역청이 아닌

마른 나뭇가지들로 저 공중에 집을 엮으셨을까

무성해지는 잎사귀들 속에 우리를 숨기셨을까

 

가지 끝에 등이 찔려 날아 오를 때마다

조금씩 둥그러져가던 집

그런 다음날이면 햇빛이 더 깊숙이 꽂혔다 가던

빗물조차 오래 머금을 수 없던 집

때로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 툭툭 들리던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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