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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숲의 반란. |
겨울 숲은 서슬 퍼런 칼날 같은 차가운 바람을 빼든다. 겨울바람은 숲의 제왕이든, 숲의 천사든, 숲의 난폭자든지 간에 누구에게도 성역이 없다. 이것은 진정 아름다운 봄날을 만들어내기 위한 숲의 시련일지 모른다. 가끔 배고픔에 견디지 못한 청솔모가 지난 가을에 숨겨둔 도토리를 찾아 잽싸게 뛰어다니는 광경과, 가끔 나뭇가지를 기웃거리며 날아다니는 박새가 살아있는 겨울 숲을 간헐적으로 나타낼 뿐 대체로 고요한 편이다.
하지만 눈과 귀를 열고 가만히 숲을 들여다보면 숲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가운 공기와 거센 바람이 나무의 껍질을 갈라놓고, 나무의 줄기를 부러뜨리고, 흰 눈 쌓인 나뭇가지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넘어진다(사진 1). 겨울 숲의 차가운 바람은 마치 현상범을 수색하는 수사관처럼 숲속의 겨울 내내 자신을 보호할 만큼 따뜻한 곳을 찾지 못한 나약한 동물이나 식물 모두를 검색해낸다. 그래서 겨울이면 숲속의 친구들 대부분은 죄진 놈처럼 숨어산다.
우리가 보기엔 가혹한 겨울이지만, 그들은 시련으로 생각하며 더 강한 유전자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련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다는 표현을 넘어 진정 우리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쓰게 만든다.
야생동물 추적놀이
겨울 숲을 찾는 맛은 마치 청양고추가 내는 자극적이지만 산뜻한 맛이 있고, 익스프레스 커피처럼 화끈한 맛을 준다. 그런 기분을 느끼며 찾는 숲에서 무엇보다도 시선과 관심을 끄는 것은 숲속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내가 숲속의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치 새들은 나를 관찰해 보라는 듯 뽐내며 나뭇가지 여기저기를 옮겨다니고 나무의 줄기를 빙빙 돌며 무언가를 열심히 뒤지는 곳으로 시선이 간다. 얼른 준비한 카메라로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하지만 쉽게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 배낭에 든 8배 망원경으로 좀 더 세밀하게 관찰을 시도한다(사진 2). 그리고 기록 노트와 필기구로 자세하게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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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딱따구리가 남긴 흔적. |
새는 특히 활발하게 활동해 일시적인 집중을 요한다. 새를 관찰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내력과 정확한 관찰력, 그리고 기억력이 필수다. 새의 크기, 모양, 색상의 특징, 소리, 움직임, 그리고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를 기록한다. 일반적으로 새 관찰은 가능한 한 이른 아침이 좋고, 잘 모르는 새를 만났을 때는 정확한 관찰로 기억해두면 추후 전문가나 도감의 도움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새들이 알을 품는 시기라든지, 아니면 철새의 경우 벌써 이동해버린 경우, 또는 털갈이를 하는 경우엔 새가 눈에 띄지 않아 실망할 수밖에 없다.
새들을 만족스럽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현장경험이 필요하다. 눈이나 습한 땅 위에 새들이 남겨둔 흔적인 발자국을 통해 새의 종류를 판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우선 새의 발자국 길이, 가장 긴 발가락 길이,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각도를 관찰하고 기록해두면 도움이 된다.
그들이 먹고 버린 열매의 껍질 등을 잘 관찰하면 새들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먹어치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잣 방울이 원상태 그대로 보이더라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잣 방울 안에 잣들이 이미 없다는 것이 관찰될 때가 있다. 이는 분명 치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새들이 범인이다. 하지만 잣 방울이 이미 외형부터 모두 먹어버려 마치 사과꼭지만 남은 듯 보이면 이는 새들의 짓이 아니라 범인은 청솔모나 다람쥐인 설치류다(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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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다람쥐가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
새들 대부분은 우리가 흔히 숲을 찾은 밝은 낮에 활동하기 때문에 대체로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반면 숲에 사는 젖먹이동물이나 네 발로 다니는 몸집이 작은 동물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며, 박쥐같은 경우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야생동물들 쉽게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부터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흰 눈이 많이 내려 먹을 것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경우 등의 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야생동물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관찰하려면 탐정이라도 된 듯 그들이 남긴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 밤에 숲을 찾아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남긴 발자국이나 먹이, 또는 배설물을 발견하고 그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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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 청솔모가 잣을 먹어치운 흔적. |
그들의 흔적은 숲에서 동물을 추적하는 실제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만일 초식동물이라면 나뭇가지나 뿌리, 또는 나무 껍질을 먹어치운 흔적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동물이 숲에 서식하는지 알 수 있다. 설치류가 나뭇가지를 먹어치운 흔적은 비교적 거칠거칠하고, 고라니가 먹은 흔적은 일반적으로 마치 뜯어낸 듯한 모양을 하며, 다람쥐는 나무에 작은 구멍들을 남긴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도토리나 밤, 또는 잣과 같은 나무 열매나 종자를 기꺼이 먹는데,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긴다(사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