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야생동물들의 색깔놀이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05

야생동물들의 색깔놀이

 

▲ <사진 5> 토끼의 겨울 옷.
유난히도 앙상한 가지에 붙어 있는, 마치 이빨 빠진 듯한 모습의 나무와 가끔씩 목격되는 말라비틀어진 오리나무 열매 등의 색깔은 갈색이거나 어두운 갈색이 대부분이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밝게 비치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 숲의 색깔은 대체로 어둡다. 그 어두운 숲에 가끔은 화려한 옷을 입고 다양한 색상을 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동물들이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살아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토끼가 겨울이면 옷을 갈색으로 갈아입는 이유는 자신을 해치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사진 5, 6). 물론 겨울엔 볼 수 없지만 많은 곤충들의 애벌레 얼굴에 마치 진짜 눈처럼 보이는 화려한 가짜 눈을 만들고, 나방은 날개에 눈 같은 화사한 색상을 하고 있다. 이는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듯한 허기에 찬 새들에게 겁을 주고 놀라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사진 7).

둥지 안에 있는 어린 새의 주둥이를 유심히 보면 주둥이 안의 색깔이 유난히도 강렬하고 분명하다. 이는 어미 새로부터 먹이를 얻어먹기 위한 강렬한 메시지인 것이다. 어미 새는 먹이를 물고 와서 아이들 중 가장 입을 크게 벌리고 강렬한 요구를 하는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사진 8). 그래서 종종 한 둥지에서 자라도 몸집의 크기가 차이를 보이는가 하면, 심지어 둥지 안에서 경쟁을 시켜 약한 아이를 의도적으로 돌보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다. 이는 맹금류의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며, 어미의 목적은 강하고 튼튼한 후손을 기르는 것이다.

▲ <사진 6> 토끼의 여름 옷.
야생동물들에게 색깔은 서로의 이해를 돕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같은 공간 내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들 간에 경계 수단이기도 한다. 특히 낮에 활동하는 새들이나 곤충, 양서류나 도마뱀 등에게는 색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 동물들의 색상 감지 능력은 인간이 지닌 능력과 다르다. 새들은 파란 색의 파장을 감지하는 데 둔감하고, 곤충은 빨강색을 구분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벌이나 나비는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자외선의 파장까지 볼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반면 야행성 동물들은 색상을 구분하는 점에서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세상의 화려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반면 다른 기능인 청각이나 후각이 매우 발달하게 된다.

고라니나 토끼 같은 야행성 동물들이 엉덩이에 흰 점이 있는 것은 서로 같은 무리라는 것을 알리고 알아차리는 표시로 활용된다. 화려하지만 좀 징그럽게 느껴지는 무당개구리나 두꺼비의 색깔은 자신의 천적을 놀라게 하거나 맛이 없게 보여 멀리하게 하는 수단이다(사진 9).

카멜레온의 경우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활용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해치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먹이로 삼는 친구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색상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나방의 화려하고 맛없는 경고색도, 예를 들면 초음파를 이용해 먹이를 구하는 박쥐에게는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후각과 촉각만으로 먹이를 구하는 야행성인 두더지를 만나도 이들 보호색이나 경고색은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 <사진 7> 나방의 경고색.
그렇다고 모든 야행성 동물들에게 이러한 보호색이나 경고색이 전혀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어두운 밤에 활동하나 아주 큰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구하는 부엉이나 올빼미 같은 야행성 맹금류에게는 그들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사진 10).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낮에 활동하는 친구들은 주변의 색깔과 비슷한 회색이나 갈색 옷을 입는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새들은 훌륭한 가수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화려하지 못한 단순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는 새들은 뛰어난 가수들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나비들은 비행 중에는 화려한 색깔을 나타내지만, 일단 착지하면 날개를 곧추세우고 있기 때문에 화려한 색깔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