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봄/정동윤
남산에서 명동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비만의 흰 애완견 한 마리
길 중간에 서 있다.
아니, 아주 느린 속도로 걷고 있다.
바구니 든 백발의 할머니가
그 앞에서 기다려주고 있다.
목구멍에 숨겨두었던 혀를 모두 빼내며
헉, 헉, 헉 비눗물 같은 침을 흘리며
한 발 한 발 걷는다.
뒤를 따르던 1톤 트럭기사도
개가 옆으로 비켜날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기사분의 머리도 하얗다.
“왜 거래요 개가, 할머니”
“나이 들어서 그렇지요”
퇴근 후 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고 노부부가 내리신다.
뚱뚱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내려선다. 머리 염색이 성가신 나이.
벚꽃잎 풀어놓은 봄날이 온통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