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디지털 시대 시의 위상과 전망 /정진명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24

<발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문제, 즉 당사자인 문인들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사회는 어차피 덩어리로 뭉칠 수밖에 없다. 경계선을 그어놓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모든 사회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 선이 어디까지냐 하는 것은 의외로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자칫하면 선이 아니라 성을 쌓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문단은 틀림없이 선이 아니라 성을 쌓아놓았다. 선은 한 발이면 넘나들 수 있지만 성은 문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게 된다. 문에는 당연히 사천왕 같은 문지기들이 지키고 서서 아무도 허가해준 적 없는 통행료를 받는다. 그런 쾌감을 즐기는 동안 스스로 폐쇄된 채 바깥 환경에 대응력을 상실하고 안에서 썩어가다가 고목처럼 쓰러진다.
현재의 시 추천 제도를 비롯한 문예지 중심의 흐름은 이러한 모습의 전형이다. 문예지와 학벌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뭉쳐서 코딱지만한 이익을 노리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한 시의 몰락은 가속도를 탄다. 이게 철부지들의 장난이라면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결과는 의외로 참담할 수 있다. 당장의 꿀맛이 좋은 자들 때문에 전체의 몰락에 이르는 법칙이 문학만을 예외로 비켜갈 리 없다.
이런 구태의연한 발상을 버리지 않으면 시는 살아남기 어렵다. 스스로 숨통을 조이는 행동을 멈추는 것만 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문단의 책임 있는 자들부터 이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디지털 시대의 틈새시장이란 디지털 문화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말한다. 디지털 시대는 영상으로 존재하고 시공을 초월한다. 접속지점은 은밀한 공간이지만, 그 움직임과 양상은 다국적 기업의 생태를 닮았다. 전세계를 순식간에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그 정보를 재구성하여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하여 실재하지 않는 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경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가상 공간에서 공존한다. 이들이 현실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예외로 '붉은 악마' 같은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현실 속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들이 갖는 유대는 오늘날의 인간관계처럼 끈적할 리가 없다.
그러니 이런 존재형태가 갖는 맹점 또한 지극히 자명하다. 사람은 사회 속에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또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의 소통방식 또한 이러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가 만든 가상공간의 세계 또한 현실세계로 이어지는 부분이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상공간이 아무리 실감나더라도 그것은 그 역방향의 반대급부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디지털 문화가 놓치기 쉬운, 놓칠 수밖에 없는, 반대의 현실세계이다. 그 반대란 실재하는 현실세계의 자각화 운동과 소규모 문화운동이다. 문학에 국한시켜 보면 이것은 지역별 문학 모임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어느 사회든지 그 구성의 형태는 피라미드형이 가장 안정되고 오래 간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런 틀을 바꾸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세대가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을 저절로 채워야만 그 꼭대기까지도 안정되는 법이다. 그러나 새로 유입되는 층이 없으면 이 피라미드 구조는 저절로 다이아몬드 구조로 바뀐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10년 전부터 갑자기 문학의 지형이 바뀌면서 현재 문학계는 다이아몬드 구조로 바뀌었다. 신세대는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까닭에 피라미드의 아랫부분을 채울 수 없다.
그런데도 문예지는 근대 문학사 이후 가장 왕성하게 불어났고, 시인 역시 엄청나게 불어나서 아파트 동마다 시인 한둘이 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왕성해진 문학 판의 변화를 주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학의 중앙집권화와 맞물려있다.
문학은 자생력을 갖추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자생력이란 사람들 스스로 즐기는, 그래서 그 즐거움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시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시 풍토는 추천제도와 문예지의 생존 방식에 긴밀히 맞물려있다. 시를 써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고 싶어하고 시 쓰는 능력을 추천제도와 문예지 지면 차지하기로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욕구 본능을 잘 자극시켜서 문예지는 자신들의 생존을 꾀한다.
이런 중앙 집권화가 가속화될수록 주변의 지역 문예는 생기를 잃기 마련이다. 중앙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고 있다가 연이 닿으면 중앙의 문예지로 달려가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예풍토와는 전혀 상관없는 시인이 돼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