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비평집의 제목 <파문>은 쫓아냄의 파문이 아니라,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동요와 격정의 글쓰기, 그리고 그것의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요동"친다는 뜻의 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제목은 문단에서 쫓겨나는 '파문'으로 더 다가온다. 이것은 이명원이라는 젊은 비평가가 그동안 문단에서 적당히 눈감아 주고, 인정상 또 관행상 당연시해주던 모든 영역에 대해 날카롭고 타협 없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에 이명원은 파문 당해 마땅할 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타는 혀>라는 평론집을 통해 한국문단의 거두인 김윤식 교수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을 표절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러자 김윤식 교수의 많고, 영향력 있는 제자들은 즉각 이명원을 맹비난했으며, 그 결과 김윤식 교수의 표절건은 그 내용 진위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아닌 제자들의 충성경쟁으로 변질되어 '사제 카르텔' 논쟁을 낳았다.
게다가 같은 책에서 김윤식 교수와 함께 한국비평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고 김현 교수까지 비평하는 놀라운 담력을 보였으니 그후 문단에서 이명원이 받았을 대접은 잔잔한 파문이 아니라 노골적인 파문 당함에 가까웠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파문>은 <타는 혀> 만큼이나 많은 적들을 만들 수 있는 책이다.
이명원은 '기만의 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이문열의 편협한 현실인식과 반동성을 비판하고, 서정주의 친일행각에 대해 면죄부를 주려는 문인들을 비판하고, 출판사와 결탁하여 함량미달의 작품을 칭찬 일변도로 띄워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는 '주례사 비평'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 주례사 비평에 힘입어 뜨게 된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배출한 소위 인기작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면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창비'나 '문학동네'같은 유력 문예지와 그를 둘러싼 문학권력, 그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조선일보>의 문학담당 기자 김광일도 비판한다.
![]() |
![]() |
▲ 이명원 | |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
아무리 성의껏 읽어도 함량미달만을 느끼게 하는 어설픈 소설에 붙어있는 유명 대학교수와 소설가의 화려한 상찬에 당혹하거나, 그의 상찬이 그대로 카피라이트가 되어 유력 일간지에 광고로 도배가 되거나, 그리하여 출판 며칠만에 수십만부가 팔렸다는 뉴스에 접했을 때 느끼던 씁쓸함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아무리 봐도 표절이 분명한 책을 두고 절대로 표절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다는 둥 난해한 문학이론을 들먹여가며 옹호하는 비평가들의 글을 접할 때마다 문학의 그 오묘함에 거의 경악했던 경험은 또 없는가.
그래서 <파문>을 읽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통쾌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 이명원의 진지한 비평에 대해 너무 경박한 소감인지는 몰라도 <파문>은 그동안 언제나 석연찮았던 90년대 이후 한국문학, 그 속의 부당 내부거래와 태만 혐의에 대한 기소장으로 다가옴을 어쩔 수 없다.
더욱이 이 기소장은 대단히 재미있다. 그는 생경한 문학용어들을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하고, 우리가 흔히 비평이라고 하면 연상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난해함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게 씀으로써 아주 재밌게 읽혀지는 비평집을 독자들에게 선물하였다. 불필요한 난해함은 일종의 지적 사기라고 믿는 독자들에게 <파문>이 지닌 이러한 미덕은 참 건강하게 여겨진다.
또 <파문>은 일종의 지적 무협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드넓은 중원에 저마다의 논리와 까다로운 이론을 무장한 허다한 고수들이 있다. 여기에 '비평적 실천'이라는 칼 한 자루에 모든 것을 걸고 나타난 젊은 자객. 그의 처절한 무용담이 <파문>의 줄거리이다.
나의 무협지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지는 몰라도 이명원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싸움은 아주 외롭고 고단해 보인다. 자신이 인정받아야 하고, 수용되어야 할 영역에서 끝없이 싸워야 하고, 싸운다면 차라리 낫지, 대가들을 공격함으로써 튀어 보이려 한다는 식의 모욕을 듣고, 그마저도 없이 아예 논의에서 배제 당할 때, 한마디로 '왕따' 당할 때의 참담함이야 오죽하겠는가.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그의 생활인으로서의 고통, 작업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그의 싸움은 더더욱 안쓰럽게 보인다.
그는 가난하다. 그는 대학교수도 되지 못했고, 시간강사 자리 하나 얻질 못했다. 이렇게 미운 말만 골라하는데 유력한 문학지에서 지면을 줄 리도 없다. 그래서 "생활인으로서의 남루한 소시민성과 내가 쓰는 비평의 제법 세련된 수사학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그는 자주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자괴감을 스스로 소시민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엄살이 아닐까" 거듭 반성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비판적 글쓰기'는 행복한 작업이 아니었고, 차라리 지독한 고통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내 고통에 정직했으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글쓰기의 주요 동력은 고통이며, 고통에 대한 반발 때문에 또 한 걸음 나아가게 됨을 또한 고백한다.
물론 가난과 고통 속의 글쓰기가 이명원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문사들이 그러해 왔고, 지금도 어느 가난한 자취방에서 문학에 미래를 걸고 있는 수많은 문학지망생들이 있을 것이다. 문학이란 바로 그 고통을 바탕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이 세상을 해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90년 이후 한국문학에서 진정한 고통을 발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작가를 부단히 긴장하게 만들어야 할 깨어있는 고통은 얼마나 쉽게 냉소와 허무가 되고, 고통의 진정성이 사라진 자리에 수많은 엄살과 열정을 가장한 엉터리 욕망들만 들어앉은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질리도록 보아왔는가.
그렇기에 이명원이 그 고단한 글쓰기를 통해 타협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을 실천해 나가려는 모습은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하고, 독자로서 이 젊은 비평가에게 어떤 희망을 갖게 만든다. 그 희망의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내용이다. "지배적인 질서와 권력에 저항하는 치열한 비판의식을 죽음에까지 견지하는 영원한 재야"가 바로 그 자신이 되어달라는 희망이다.
사실 너 알고, 나 알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권력을 행사하는 그들만이 그런 게 없다고 손사래치는 이 문학권력에 대해 가장 분노해야할 당사자는 이명원과 같은 젊은 비평가보다도 서점에 가서 돈주고 책을 사오는 우리 일반 독자들이다.
문학권력의 가장 큰 폐해는 그 권력이 우리가 책값으로 지불하는 돈, 죽어라 한달 일해서 받은, 그마나 몇 푼 안되는 그 피 같은 돈의 일부를, 그래도 나의 팍팍한 삶이 조금이나마 윤택해지리라는 희망 때문에 끝끝내 문학을 사랑했던, 또 경외했던, 그래서 기꺼이 지불했던 우리 일반 독자들에게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되지도 않은 책을 좋은 책이라고 팔아먹음으로써 하늘같은 우리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동안 별 생각없이 신문의 서평란을 보고 서점으로 가서 책 뒤에 실린 평문의 찬란한 수사에 잔뜩 기대감을 품고 책 한 권을 골라들던 나는 오늘밤 내 책꽂이를 골똘히 들여다보며 그 모든 선택에 대해 곰곰이 반추해 봐야 한다.
저 책들에게 쏟아진 상찬이 진정으로 그것의 작품성에 기인하는 것인지, 또 내가 느꼈던 소감의 일정 부분이 평론가의 상찬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된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신문에 실린 출판사의 광고가 내 선택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 정말 읽어야 할 책들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
<파문>을 읽고나면 마치 지금까지 자신이 살던 세상이 거대한 매트릭스 속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네오처럼, 서점의 신간 진열대 제일 앞줄에 탐스럽게 올라있는 책 한 권, 우리로 하여금 그 책을 골라들게 만드는 결정과정에 숨어있는 파벌과 자본의 매트릭스를 의식하게 된다.
네오가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제압할 능력을 갖게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 매트릭스를 깨달음으로써 어떤 책이 정말 좋은 책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의 신장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이 적극적인 책읽기의 시작일 것이고,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실천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실천을 주장하는 이명원과 같은 젊은 비평가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시론(詩論)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는 마음의 길 찾는 지형도 (0) | 2011.09.19 |
---|---|
정통시가 외면당하는 이유 (0) | 2011.09.19 |
디지털 시대 시의 위상과 전망 /정진명 (0) | 2011.09.19 |
신춘문예를 꿈꾸는 이들에게- 선배들이 (0) | 2011.09.19 |
시인을 만드는 9개의 비망록 (0) | 201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