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론
- 방송통신대학 유명 교수 -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상상력은 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시를 시답게 만들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시 또는 문학작품과 비평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도 바로 이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은 논리의 영역에 속하는 정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은 한 편의 작품이 지닌 미적인 특징이나 주제와 같은 것들을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 특히 시는 이와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다.
시적인 언어는 함축적인 언어이고 그만큼 논리적 비약을 감행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시가 논리적으로만 쓰여진다면 그 시는 정말 따분한 시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시를 읽으면서 긴장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술이나 이성이 도달하기 힘든 진리나 진실, 또는 정서를 논리의 비약을 통해 표현해 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서정주, <국화옆에 서> 중에서)라는 시편을 생각해 보자. 이 시를 단순화시켜 본다면 '국화꽃 = 내 누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왜 그렇게 되는지 결코 설명해주 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 제시될 뿐이다. 그 이유를 시를 읽는 독자에게 추측하 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과학적이고 산문적인 언술이라면 이러한 표현은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논리적 언어 로 설명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냥 제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은 논리적 측면에서 본다면 비약이라 고 할 수 있다.
논리적 흐름을 하나하나 채워 가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생략하고 뛰어넘는 것이다. 시를 읽을 때 이러한 비약이 일어버린 간극 을 채워 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생략과 비약은 상상력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상력은 시를 시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 비약을 독자들은 시의 내적 구조와 문맥을 통해 메꾸어 내고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의 감상이고 이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서정주의 시로 돌아가 보자. 1연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나오고, 2연에서 천둥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 이후에 3연에서 '국화꽃'의 이미지가 내 누님의 어떤 면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국화꽃 = 내 누님'이라고 선언하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그저 국화꽃은 내 누님과 같은 꽃이라고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를 메꾸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소쩍새의 울음은 봄에 들리는 것이며, 먹구름 속에서 울리는 천둥은 여름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앞의 두 연은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의 흐름과 그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들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기를 거쳐 나타나는 3연은 자연스럽게 가을의 이미지와 결합된다.
이러한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의 흐름은 또한 인생의 흐름과도 결합되어 봄이 어린 시절에, 여름이 청년기에, 그리고 가을이 장년기에 각각 해당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결합을 통해 우리는 3연의 진술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 누님'이 결코 어린 누님도 아니고 청년기의 격정을 지닌 누님도 아닌 장년기의 누님이 되는 것이다. 즉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시절을 거쳐서 이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원숙한 이미지의 누님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국화꽃을 바로 이와 같은 누님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 편의 시에 나타나는 상상력을 통한 논리적 비약을 해명하는 것이 곧 그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길 중의 하나가 된다. 이렇게 시의 이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면 이 상상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M. H. 에이브럼스는 상상력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이제까지 두 부류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거울(모방)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불꽃(창조력)으로 보는 관점이다. 상상력을 거울 즉 모방으로 보는 관점
은 고전주의적인 문학관과 관련된다. 예를 들면 스펜더는 "상상력 그 자체는 기억의 작용이니까 기억이 시의 기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한 것을 기억하여 그것을 어느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다."라고 상상력을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상상력이 기억 작용의 하나라는 설명이며, 다시 말해 정신에 의한 일종의 모방이라는 설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을 자연의 모방으로 본 이후 그 영향에 의해 형성된 재생적 상상력 이론이 모두 이러한 영역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상상력을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보는 견해는 낭만주의적 문학관과 관련된다.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잘 개념화된 이 상상력 이론은 상상력을 창조성이라는 인간 정신 내면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보는 경향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자들은 상상력의 초월적인 힘을 믿고, 그것을 통해 현실적인 제한과 한계를 초월하는 힘을 얻고자 한다. 예를 들면 베르그송은 "비사실적, 부재한 사물들에 대한 사고의 일종, 기억도 지각도 아닌 구체적인 재현을 사람들은 상상력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비사실적이고 부재한 사물, 즉 재현적인 사물이 아닌 정신에 의해 창조된 사물을 그려내는 것이 곧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시인은 현실이나 기억, 지각으로부터 초월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낭만주의자들의 상상력 이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코울릿지의 생각이다. 그는 상상력과 모방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모방(imitation)의 본질이 보았던 것 또는 알려진 것의 재현이나 모사에 있다면 상상력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융합하거나 혼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환상과 매우 유사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코울리지는 시적 상상이 대상을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상상력의 본질이 주관과 객관의 혼연일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과 객관의 일치란 일상적인 상태의 종합이나 합일이 아니라 그 대상이 한데 융화되어 새롭게 재창조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주관과 객관은 무엇인가. 코울리지에 의하면 주관이란 자아 혹은 이해력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식의 주체이며, 객관이란 인식행위에 의해 인식되게 되는 대상이다. 낭만주의에서는 이러한 주관과 객관, 즉 자아와 대상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융화되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성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고전주의적 사유구조와는 상반되는 관점이라고 하겠다.
낭만주의자들이 말하는 상상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주체와 객체의 융화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으로, 서정시의 본질적인 특징인 주관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서정시는 본질적으로 주체와 대상, 자아와 대상 사이의 간극을 제거하고 자아와 대상이 혼융된 상태를 지향하는 장르임을 앞의 강의에서 살펴 보았었다.
자아는 대상으로서의 물질을 자아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대상으로서의 사물은 자아의 내면적 정서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사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상으로서의 사물은 물질성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자들은 이러한 상상력을 통해 물질성 너머로 비약해 간다. 상상력이 비사실적이고 부재한 사물을 구체화시키는 힘을 지닌 것이라는 베르그송의 정의에서도 이러한 비약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상상력이라는 것은 죽어가는 정열을 되살리기 위해 살을 회춘시키는 불사의 신을 말한다"고 정의하는 셸리의 정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서 상상력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사물의 세계로부터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로 비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상상력은 이처럼 시적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과정을 알 뿐만 아니라, 그 비약에의해 생략된 논리적 고리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면 시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 중의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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