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연필로 쓰기/정진규

능선 정동윤 2011. 9. 20. 15:42

연필로 쓰기/정진규

 

 

한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의 냄새가 방

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 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 번 쓰고 나면 그 뿐 지

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 쓸

수 없는 나의 생애 용서 받고자 하는 자의 서러운 예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온전치 못한

반편 반편도 거두어 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잘못 간 서로의 길은 서로가 지워 드릴 수 있기

를 나는 바랍니다 떳떳했던 나의 길 진실의 길

그것마저 누가 지워버린다 해도 나는 섭섭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추고자

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향그런 영혼의 냄새로 만나기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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