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詩의 언어(言語) / 詩의 운율(韻律) / 詩의 구조(構造)

능선 정동윤 2011. 9. 20. 16:02




시 창작을 할 때 항상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를 짓겠다고 결정하면 그에 필요한 시의 제재(題材)나 소재(素材)들은 우리 주변에 무한정으로 널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만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선택한 제재나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짓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면 가슴부터 답답해 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때에도 일반적인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식이라든가 문체, 어휘, 문장 부호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교가 필요합니다. 시를 지을 때 형식, 문체, 어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잘 활용하면 시 창작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기교는 시를 지을 줄 알았을 때 활용이 가능한 것이지 시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활용하려는 생각 자체가 허영이고 사치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이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알아야만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의 언어'와 '시의 운율'과 '시의 구조'입니다.
그럼 시의 언어부터 공부를 시작해 볼까요?

1. 시(詩)의 언어(言語)

시의 언어는 곧 '시어(詩語)'입니다.
그럼 '시어(詩語)'란 어떠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시 짓기[創作] 교실> 제5강에서 공부하였으므로 다 알고 계시지요?

"시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 관념을 뛰어넘어서 독자로 하여금 폭넓은 상상력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한 편의 시 속에서 그 시의 내용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면서 시어 하나 하나가 표현하려는 사물이나 대상의 본질, 또는 이미지를 확대시켜 우리에게 간명하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고 할 수 있지요. "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신다면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모두 다시 한 번 '시어란 무엇인가?'를 음미해 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기서는 <시 짓기[創作] 교실> 제10강에서 보충 학습식으로 가볍게 스쳐 지나왔던 '시어의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때 말씀드린 대로 보는 관점에 따라 시어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여기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특징들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시어(詩語)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 그 자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시인의 태도, 느낌이나 생각, 가치 판단 등을 나타낸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같은 시어를 사용했더라도 그 시어를 사용한 시인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 까닭은 시어 하나 하나에 그 시인만의 개성적인 시각으로 본 시인의 태도, 느낌이나 생각, 가치 판단 등이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 고민해야 하고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로 시어(詩語)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함축적인 의미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지시적인 의미를 뜻하는 '사전적 의미'는 누구나가 다 그렇게 알고 있는 뜻만을 지니고 있으므로 보편타당성은 있지만 시어가 생명으로 해야 할 시인의 개성적 시각의 결과로 생겨난 의미는 스며들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시어는 시인의 눈으로 본 대상의 본질적 의미를 담은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시어(詩語)는 압축과 비약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 하나의 시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 전체에서의 시어를 뜻하는 것으로서 시어는 결코 설명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시어와 시어의 결합에 의하여 불필요한 표현은 생략하고 뛰어넘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넷째로 시어(詩語)는 리듬과 이미지, 어조(語調)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김소월의 시들 ㅡ접동새, 가는 길, 산유화, 금잔디 등ㅡ을 읽어 보면 시어가 리듬과 이미지, 어조(語調)등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어(詩語)는 도치나 반복, 점층이나 점강 등의 방법에 의하여 시가 긴장과 대립의 구조를 가지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시의 비유와 강조 등 시의 수사법과 관계되는 것인데, 이는 시 창작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서 별도의 설명은 생략합니다.

2. 詩의 운율(韻律)

시의 운율은 우리가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리듬입니다.
이 운율은 외형률이 있는 정형시인 시조나 민요조의 시들에서는 매우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재율이 흐르는 자유시나 산문시 등에서는 그 운율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시 가운데서도 서정시들에서는 운율감을 느끼기가 쉬운 편이나 상징주의나 주지주의 계열의 시들에서는 그 운율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럼 작품에서 시의 운율을 느껴 볼까요?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이호우의 '달밤'에서>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ㅡ <김소월의 '가는 길'에서>

다른 시들도 많이 찾아 읽으면서 시의 운율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3. 詩의 구조(構造)

글을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으로 크게 나누었을 때, 시는 운문에 속하고 설명문과 논(증)문, 묘사문과 서사문 등은 산문에 속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지요?
여기서 설명문과 논(증)문, 묘사문과 서사문 등은 기본적으로 '서론-본론-결론'의 3단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3단 구조에서 4단 구조, 5단 구조로 확장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에서는 어떤 구조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시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구조는 한시(漢詩) 기승전결(起承轉結)의 4단 구조입니다.
첫째 구인 '기(起)'에서 시 전체의 의도를 내비치고[일으키고], 둘째 구인 '승(承)'에서 첫째 구의 뜻한 바를 이어받아, 셋째 구인 '전(轉)'에서 시에 변화를 주고, 넷째 구인 '결(結)'에서 시 전체를 마무리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따라서 시 창작에서는 기본적으로 이 구조를 익혀 두어야만 나중에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변형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한시를 많이 읽고 공부해 두는 것도 시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며, 우리 시에서는 한 연이 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를 읽어 보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기승전결의 4단 구조로 되어 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살펴볼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겨레의 정한(情恨)을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한 시라는 이 '진달래꽃'은 첫째 연에서 '사랑하는 임을 체념하고 보내는 이별의 정한'을 풀어내고[起], 둘째 연에서 그 정한을 이어받아 '가시는 임을 축복'한 다음[承], 셋째 연에서 변화를 주어 '자기 희생을 통하여 원망을 초극한 고귀한 사랑'을 노래하고[轉], 마지막 넷째 연에서 '이별의 정한 극복'을 역설적으로 노래함으로써[結], '이별의 슬픔과 사랑의 승화'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