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처음 쓸 때 도대체 시의 행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가 참 난감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정형시 같은 경우는 형태가 정해져 있으니,
그 형태에 맞게 행을 배열하면 그만이지만, 자유시 같은 경우는
시를 쓰는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나는 이 문제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래, 자유시이니까,
행갈이도 '자유'가 아닌가, 내 마음의 행로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지,
뭐 별다른 구속이나 제약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 문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정말 자유로운가.
시행은 시의 리듬과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시행은 운율적으로 짜여 있는 줄이라고 말한다.
문덕수의 <<오늘의 詩作法>>에 보면, 김소월의 <가는 길>의 행갈이와
리듬의 문제를 실감 있게 기술하고 있다.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 김소월 <가는 길> 일부
위의 시를 다음과 같이 고쳐보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펴보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처럼 <가는 길> 1연과 2연을 7·5조를 한 행으로 하여 1연으로 묶어버리면,
원래의 시에서 드러나는 이별의 현장에서 느끼는 실제적인 감정이 거의 죽어버린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를 한 행으로 읽어버리면,
그만큼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현장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과 감정의 기복은 빠른 리듬 속에
묻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로 3행으로 끊어 읽어보면, 이별의 절절한 감정들이 행간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살아난다.
「가는 길」의 행갈이는 단순한 시각상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로써,
그 리듬의 완급이 시의 의미구조와 연관된다. "그립다"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 리듬의 감정이 한층 고조되어 "말을 할까"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런 의사를 드러내는
충동과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심리와의 갈등이 뒤얽히고,
"하니 그리워"에서 리듬의 한 단위가 어루어지면 차마 복바치는 그리움으로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심리와 갈등은 그 절정을 이룬다고 문덕수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설명도 한 작품의 특정 리듬을 해명하는데, 불과하다.
위의 설명이 모든 자유시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시의 리듬은 나름대로의 원리가 있지만, 그것은 특수한 원리에 국한되는 것이다.
자유시 백 편이 있으면, 배 가지의 원리가 있는 셈이다.
현대시의 리듬은 거의 내재율이기 때문에, 비슷한 소리의 규칙적인 반복으로써
리듬을 드러내는 압운이나 음수율, 음보율 같은 율격으로 규명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운위되는 압운이나 율격은 대체로 정형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압운 같은 경우는 우리시보다 영시나 한시에 많이 나타난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두야 가련다
안윽한 이 항구-ㄴ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박용철, <떠나가는 배> 에서
우리시에서도 인용작품처럼 특정 위치에 같은 음운이 반복됨으로써 리듬감을
드러내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시의 경우는 영시나 한시처럼
음절의 강조가 없는 단순한 소리의 반복효과만 나타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압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배부른 듯/ 아름다워라/
남을 것만/ 남은 기둥//
약한 곳은/ 패이고/
질긴 곳만/ 무늬로 남아//
몇 백 년/ 세월 밟은 자국/
하늘의 말/ 적혀 있다//
-이상범, <고졸경-부석사 배흘림 기둥>
위의 정형시는 시조로서 음보율은 4음보, 음수율은 대체로 3·4,
혹은 4·4조로 되어 있다. 한국정형시(시조)는 음수율이나 음보율로 어느 정도의 리듬을 해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는 시의 리듬이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의 호흡이요 언어가 자연적으로 형성하는 음성의 질서인 내재율이기 때문에
거듭 말하거니와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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