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아등507

능선 정동윤 2011. 6. 6. 16:01

여름산을 오르면서 나는 산정을 바라본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하얀 화강암이  뜨거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이 났다.

바위산의 일부분이 초록으로 얼룩지고 구름이 내려다보는 산정의 단호한 침묵이

이따금 터지는 우리들의 웃음 소리에 생강나무 이파리처럼 가볍게 흔들린다.

 

탕춘대 능선에 불어오는 유월의 푸른 바람엔 솔향기가 잔뜩 묻어있다.

연신 땀방울을 훔치면서 무심히 친구의 등산화 뒷축을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바윗길이 나타나고 다시 숲 속으로 스며들면 시원한 신갈나무 그늘이 땀을 닦아준다.

여름산을 서두르지 않게 오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욕심을 버리고 올라간다.

그리고 졸린 짐승처럼 게으름을 피우며 바람이 잘 통하고 시원한 곳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다.

정선이는 결혼 할 딸과의 약속으로 조금 일찍 하산하였다.

 

어제의 불이토 산행이나 오늘의 북아등 산행이 모두 소풍처럼 가볍다.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산은 더 두껍게 옷을 껴입고 추우면 추울수록 옷을 더 벗는다.

그러나 단풍나무는 추워도 누른 누더기 같은 옷을 벗지 않더니 새순이 돋을 무렵이 되어서야

낡은 옷을 벗어 던진다. 삶을 향한 집념이 이 지구상에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을 나무 같다.

단풍나무 신록이 유난히 빛을 발하는 유월의 상오는 무덥고도 무덥다.

 

향로봉 아래의 전망 좋은 바위벽에 자리를 잡앗다.

산행보다 더 푸짐한 채소와 과일의 식단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열사의 사막에서 꿈을 향해 치열한 삶을 담금질했던 규진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어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지독한 굴욕을 지불하고 잠을 줄이며 일에 몰두했던 한 시절이

이제 추억으로  자리 잡혔다.

일이 우리의 존재감이 되었던 젊은 날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도취되어 정열을 태웠다던

치복이도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폭포처럼 거침없이 달려 보았다는 잔잔한 목소리도

여름산의 뜨거운 열기 속에 조금씩 침잠 되어갔다.

 

우리는 향로봉 무거운 중압에 눌리어 도취에서 깨어났고 시간은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산 길의 친구의 배낭 위에 갈색의 솔잎 하나가 툭 떨어져 얹혔다.

솔잎의 한 생애가 친구의 배낭 위에서 비로서 긴 잠을 시작하게 되었다.

늘 푸르기만 솔잎이 생각지도 않는 한 여름에 낙엽이 되어 이렇게 떨어질 줄이야.

탕춘대 능선으로 다시 들어와 녹번동 골목까지 길게길게  흘러 내려왔다. 

 

산행 만큼이나 긴 뒷풀이를 즐기다 불콰한 얼굴로 귀가하였다.

저녁 늦게 정선이와 만나 남산을 한바퀴 더 돌았다.

 

북아등 507회 잘 다녀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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