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3월/장석주

능선 정동윤 2011. 9. 23. 08:51

3월/장석주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기 얹혀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저 3월의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 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 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새 슬픔 하나라도 빚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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