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뿔/신경림

능선 정동윤 2011. 9. 26. 16:51

뿔/신경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뿌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강에 가고 싶다/김용택  (0) 2011.09.26
프란츠 카프카/오규원  (0) 2011.09.26
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0) 2011.09.26
대설 전/신경림  (0) 2011.09.26
길/신경림  (0)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