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가을 집짓기/홍윤숙

능선 정동윤 2011. 9. 27. 21:52

가을 집짓기/홍윤숙

 

 

돌아가야지

전나무 그늘이 한 겹씩 엷어지고

국화꽃 한두 송이 바람을 물들이면

흩어졌던 영혼의 양떼 모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가서 한 생애 버려뒀던 빈 집을 고쳐야지

수십 년 누적된 병인을 찾아

무너진 담을 쌓고 창을 바르고

상한 가지 다독여 등불 앞에 앉히면

만월처럼 따뜻한 밤이 오고

네 생애 망가진 부분들이

수묵으로 떠오른다

단비처럼 그 위에 내리는 쓸쓸한 평화

한때는 부서지는 열기로 날을 지새고

이제는 수리하는 노고로 밤을 밝히는

가을은 꿈도 없이 깊은 잠의

평안으로 온다

따뜻하게 손을 잡는 이별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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